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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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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제일 가기 싫은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한밤의 응급실이라고 말하겠다. 그곳에는 인간의 온갖 마이너스 감정들이 고여서 꿈틀거린다. 신음과 비명이 난무하고 황망함과 난처함이 교차한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몰라 불안한 표정으로 그저 시간을 흘려 보낸다. 그렇기에 한밤의 응급실은 아사리판이다.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다.
해가 바뀐 1월에도 어김없이 응급실 신세를 졌다. 이번에는 두통이 문제였다. 그것도 편두통. 내 머릿속에 딱따구리가 사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할 만큼 편두통이 심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면 실제로 그런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딱딱딱. 딱따구리가 내 오른쪽 머리를 쪼아대는 소리.
두통은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이런 통증을 겪어야 하는지 반성부터 하게 되니까. 물론, 반성 뒤에 찾아오는 것은 분노와 원망이다. 안경 쓴 사람 얼굴을 때리지 않는 것처럼 머리 역시 건드리지 않는 게 ‘국룰’ 아닌가!
타이레놀을 줄기차게 먹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날, 끝내 구토까지 했던 그날에 나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너무 어지러웠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세상이 빙빙 돌았다. 와중에도 두통만은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한밤의 응급실은 환자들로 넘쳐났다. 술김에 싸우다가 다친 사람부터 복통이 심해 찾아온 사람까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었고 또 각자 자신이 제일 불쌍하고 아프다고 여겼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두통은 겉으로 보이는 게 없으니 그저 조용히 누워 있을 수밖에.
나는 진통제가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걸 보며 잠시 삶에 대해 생각했다. 바야흐로 새해가 막 시작된 참이니 그런 생각을 하기 딱 좋은 순간이기도 했다. 장소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경성 두통입니다.”
검사란 검사는 다 한 후에 의사가 한 말이었다. 큰병이면 어쩌나 걱정했던 나는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자판을 칠 수 있는 두 손만 멀쩡하다면 적어도 굶지는 않으니 감사할 수밖에. 하지만 의사는 생각이 달랐다.
“글쓰는 직업이라 하셨죠? 환자분처럼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들에게는 안 어울리는 일이에요, 사실. 같은 일을 하는 이상 두통은 달고 사셔야 할 겁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이 빌어먹을 두통을 달고 살아야 한다니!
의사의 말을 들은 그날 이후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일을 찾아야 할까?
내가 글쓰기를 그만둔다고 해서 아쉬워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결정만 내리면 될 일이었다. 새 직업을 찾으려면 고생이야 좀 하겠지만 마감에 쫓겨 전전긍긍하다가 응급실에나 실려가는 삶과는 이별할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무슨 일을 한다해도 소설 쓰는 것보다는 돈을 많이 벌겠다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벗지 못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제발 다시 생각해주세요, 라고 매달리는 팬이나 독자 때문가 있어서도 아니다. 희대의 명작을 한 편 남기고 은퇴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도 아니다. 나는 그저 글쓰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으니 두통쯤은 감내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밤의 응급실에 ‘또’ 실려간 1월의 어느 날, 나는 두통이 조금 가라앉자마자 핸드폰부터 꺼내 들었다. 노트북을 챙겨오지 못해서 핸드폰 메모장에라도 글을 쓰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간호사에게 들켜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했다. 눈을 감고, 나는 못 다 쓴 글의 뒷부분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생각했다.
누군가가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고, 의사 선생을 찾아 울부짖고, 술냄새가 진동하고, 썅욕과 함께 싸움을 벌이는 한밤의 응급실에서 나는 머릿속 딱따구리를 달래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그리고 써야 하는 이야기를…….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전건우
"우여곡절 끝에 마감에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