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맞이하여 새 취미 하나를 만들었다. 어깨 부상으로 인한 휴식과 생활비 절약을 위해 폴댄스를 잠깐 쉬고 주짓수에 한 눈을 팔고 있는 중이다. 돈을 벌땐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폴댄스는 상당히 고급 취미에 속한다. 특수운동이라 매달 빠져나가는 학원비가 만만치않았다. 거기에다 손바닥만한 폴 의상 가격은 또 어떻고. 운동이라는 취미는 사실 학원비를 제외하고도 장비빨 세우고, 다쳐서 병원 다니다보면 이래저래 돈 빠져나갈 구석이 참 많다.
그래서 퇴사를 앞두고 있는 나에게 조금 저렴하고 재미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동네에 있는 주짓수 도장의 가격표를 보고 말았다. 3개월 등록시 39만원에 도복까지 준다니. 폴댄스와의 의리를 지키기위해 폴댄스 학원비를 공개하지는 않겠으나, 두 배 이상으로 차이가 났다. 게다가 도복까지 준다니.
4년 전에도 운동을 다니려고 주짓수 도장에 방문한 적이 있다. 집에서 거리는 조금 있었지만 여성 전용 도장이라 집 근처 필라테스랑 고민 중이었다. 당시에는 취미보다도 살을 빼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복 비용만 15만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도장을 나왔다. 도복을 15만원주고 사기에는 내가 다이어트가 끝나도 이걸 하고 있을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근데 여긴 일단 도복을 하나 주고 시작한다니! 그리고 횟수 제한이 없어서 일주일에 있는 모든 수업을 다 들어도 된다고 하니 내가 찾던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주짓수는 생각보다 폴댄스랑 비슷한 점이 많다. 전혀 다른 운동처럼 보이지만 배우고 익히는 방식은 같다. 폴댄스가 폴, 봉 위에 올라가 신체를 걸거나 밀착해 기술을 구사한다면 주짓수는 폴 대신 사람에다가 기술을 구사한다. 기술이 제대로 들어간다면 폴에서 손 하나 안대고도 오랜 시간 버티고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주짓수도 기술만 제대로 들어간다면 상대를 꼼짝도 못하게 붙잡을 수 있다.
폴댄스의 코쿤이라는 기술은 한 쪽 오금을 폴에 걸고 거꾸로 매달려 남은 한 쪽 다리를 머리 위로 당겨야한다.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안오겠지만, 어쨌거나 첫번째로 오금이 제대로 걸리지 않으면 다음 동작을 실행할 수 없으며 설령 한다고 한들 떨어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폴에 올라가는 동작도 그냥 팔 힘으로 올라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팔로 당기는 힘도 중요하지만 코어 힘이 없다면 쉽게 올라갈 수 없다. 팔에서 몸을 들어올리는 힘이 나온다면 중심에서는 몸을 지탱하는 힘이 나온다. 힘을 적절히 분배하지 못하면 제대로 동작을 버티고 있을 수 없다.
상대방의 관절을 꺾거나 조르기를 이용하여 제압하는 무술인 주짓수. 상대방에게 탭을 받아낼 때나 팔이나 다리로 내 몸을 붙잡고 있을때 탈출하려고 할 때나, 마찬가지로 무턱대고 힘만으로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다. 가령 상대방을 넘어트리려고 양 손으로 허벅지를 붙잡았다고 하더라도 고개를 아래로 하고 있으면 상대를 넘어트릴 수 없다. 암바같은 탭을 받아내기 위한 동작도, 선행 동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팔을 붙잡고 골반을 들어올려도 기술이 먹히지 않는다.
정확한 순서와 자세, 힘의 분배. 이것만 제대로 한다면 두 운동 다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근력이나 유연성 등 타고난 신체 조건보다도 우선시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을 잘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렵지만.
취미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역시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 지금은 폴댄스와 주짓수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세상 모든게 다 그렇다. 기본이 탄탄해야 응용과 활용 변형까지 잘 할 수 있다. 무리해서 기본기없이 이것저것 하려고하다가는 폴 위에서 떨어지거나 스파링 상대에게 팔이라도 꺾일테니까.
저번주 금요일엔 모처럼 풀타임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삼일을 앓았다. 감기 기운에 근육통까지 더해져 꽤나 고생했다. 기본기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취미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격한 운동일수록 무리하다 다치는 일도 다반사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자꾸 욕심부리는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말이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주짓수에게 한 눈 팔고 있지만 여유가 있어지면 폴댄스에게 양다리를 걸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