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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이 기억에 남는 영화,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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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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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어느덧 1/3이나 훌쩍 지나버렸네요. 하루하루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책, 영화, 드라마, 유튜브 등 다양한 형태로 내 곁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돌아봤습니다. 2021년 4월 월간 안전가옥의 주제는 '2021년 1분기 나의 원픽 콘텐츠' 입니다.
이글은 스포일러투성이 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1분기에 완주한 콘텐츠가 별로 없습니다. 왜 모두 그런 때가 있지 않나요. 볼 건 많은데 딱히 뭘 봐도 집중이 잘 안 되는 그런 때 말이죠. 이게 어쩌면 극장엘 못 가서 생긴 일 같기도 해요. 요즘 저는 일단 들어가면 중간에 엉덩이 못 떼는 영화관 같은 조건이 아니면 뭘 보든 완주가 참 힘들더군요. 영화관 같은 공간이 절실한 요즘입니다.
<세 자매>는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본 한국 영화였습니다. 영화관에 걸린 지 한참이 지나고,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세 자매 메이킹 북이 나와서 주연 배우인 문소리 배우가 동네 서점에서 사인회를 한다는 이벤트 게시물을 본 지도 한참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죠. 사연이 많은 동시대 여성이 나오는 이야기여서 보는 동안 좀 힘들었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자주 한숨을 쉬기도 했고, 이마가 자주 찌그러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잔상이 남는 영화였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그랬고, 자주 등장하는 세 자매의 뒷모습도요.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였으니 여러분께도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제목처럼 영화에는 세 자매가 등장합니다. 우선 꽃집을 운영하는 큰 언니는 말끝에 ‘거지 같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없느니만 못한 남편은 꼬박꼬박 돈을 받으러 오고요, 하나밖에 없는 딸은 전혀 소통이 안 되는 반항아죠. 그런데 어느 날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니 암이래요. 둘째 언니는 그에 비하면 삶이 비교적 평화로워요. 교수 남편에 신실한 기독교 신자라 교회 안에서 지휘 봉사도 하고 잘 키운 아들과 딸은 말도 잘 듣고요, 얼마 전 넓은 집으로 이사까지 했죠.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둘째 언니에게도 걱정거리가 하나 생깁니다. 바로 남편이 자신이 지휘하는 성가대의 성가대원 한 명과 바람이 나죠. 거기에 혹 같은 존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셋째 동생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과자를 쩝쩝 씹어대며 엉뚱한 걸 묻고 기억도 못 하는 술주정을 하죠. 셋째 동생은 연극판에서 지지부진하게 글을 쓰고 있어요. 잘 써지지도 않는 글 때문에 매일 술을 마셔서 거의 제정신인 경우가 없어요. 청과물 유통업을 하는 아이 딸린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연극판에서는 돈 보고 결혼했다는 둥 손가락질을 하고 아들 녀석은 엄마 취급도 안 해요. 그도 그럴 것이 밥상 한번 제대로 차려줘 본 적 없거든요. 머리 큰 자식이 그를 엄마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아이 같아요.
이 세 자매에게는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죠. 배가 다른 자식이라는 이유로 큰 언니와 막내 남동생은 아버지의 폭력 속에 살았어요. 둘째는 언니와 남동생의 아픔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죄의식을 키웠고 셋째 동생은 당시 너무 어려서 기억을 잘 못 하지만 또 그것 때문에 둘째 언니가 가진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려요. 영화는 이 세 자매의 삶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이 모든 상처의 원흉인 아버지의 생신날, 막내 남동생이 식사 기도를 드리는 아버지에게 냅다 오줌을 갈겨버려요. 그것을 시작으로 생신날은 싸움판이 돼버려요. 그 자리에서 둘째 딸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사과하세요. 목사님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세요.”
제가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느낀 이유는 마지막 이 대사에 있어요. 결국 아버지로부터 사과를 받는 것을 결말로 택한 점이요. 다른 결말로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한 영화를 본 느낌이랄까요. 영화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이 세 자매의 그렇고 그런 삶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고 그것을 과연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게 해요. 어쩌면 멀리 돌아갈 수도 있었을 거예요. 세 자매끼리의 연대라든가, 각자의 삶에 꼬인 실타래가 풀린다든가 하며 열린 결말 블라블라. 하지만 아버지에게 사과를 받는 것 말고는 자식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없죠. 영화의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결말로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적으로도 당연한 일은 분명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그 장면에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 되어 주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지금의 폭발력을 가질 수 없었을 거예요. 어떤 리뷰에서는 캐릭터가 과하다는 평도 있었는데, 저는 이 결말이라면 캐릭터 역시 그만큼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이야기의 끝과 캐릭터 둘 중 무엇을 먼저 구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전 어울리는 선택이었고 그게 저와 같은 관객에겐 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뒷모습이에요. 영화에는 이상하게도 뒷모습부터 시작하는 쇼트가 많은데요, 왜 뒷모습에서부터 시작할까에 대해 제 나름대로 고민을 해보았어요. 첫째 딸의 오랜 기간 손질하지 않은 것 같은 긴 머리, 둘째 딸의 하나로 쪽진 가지런한 뒷머리, 셋째딸의 탈색해서 푸석하고 헝클어진 뒷머리. 뒷모습만으로도 각자가 대략 어떤 사람들인지 어렴풋이 보여요. 그렇지만 뒷모습은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관객에게 이 인물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보를 주지 않죠. 그래서였을까요? 뒷모습에서 시작한 쇼트가 마침내 인물의 행동을 보여주는 쇼트로 전환될 때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가늠하지 못한 채 그의 분주한 움직임만 보다가 갑자기 그를 맞닥뜨리게 되는 느낌 같은 것이요. 영화 속 세 자매는 때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들의 뒷모습만이 온전히 그들을 이해하게 하는 그들의 ‘정면’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쩌면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 속 구절처럼 등 뒤는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뒷모습』 중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번 여쭤보고 싶어요. 왜 세 자매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하는지. 그 속엔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
저는 <세 자매>라는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울다가 웃다가 했답니다. 2분기에는 영화를 더 자주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여러분도 2분기에는 더 많은 이야기와 장면을 만나시길 바라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헤이든
"제가 1분기 동안 꼬박꼬박 챙겨봤던 건 <금쪽 같은 내새끼>였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