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모아두지는 못한다. 내게 생각과 깨달음, 느낌, 감정이란 흩어져 있다가 어느 순간 불현 듯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러니 에세이를 쓰는 일도, 한 달을 마무리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도 쉽지 않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더라?’라고 하면 뿌옇고 흰 머릿속을 헤집는 기분이 든다. 그저 어느 시간에 어디서 무얼, 어떤 자세로 머물렀는지만 기억날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파편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월간 안전가옥을 시작하며 느낀 점이다. 내가 한 달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어디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짧게라도 모아두는 것.
한때는 일부러 모으지 않았다. 행복한 기억은 별로 없고 나날이 힘든 날의 연속이었던 시절, 감정과 생각을 모으는 것조차 가시에 찔린 것처럼 손끝이 아파서 그냥 흘려보냈다. 아마 그때의 습관이 남은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불행하지 않으니까. 설령 불행한다하더라도 그 불행에 지고 싶지 않으니까.
지난 2월에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기사와 칼럼, 책을 많이 찾아 읽었다. 설 전날에 있었던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 댓글을 읽다가 한동안 머리가 지끈거려 눈을 감고 있었다. 분노가 축적되고 축적되다 언젠가 터트릴 것 같다.
나는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휠체어를 끌며 오르지 못해 포기해야만 했던 수많은 가게들을 기억한다. 남들은 쉽게 가는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지하철 2정거장을 2시간 넘게 가야 했던 그 더운 여름도 기억한다. 나는 걸어서도 오가는 병원과 집을, 엄마와 함께 집에 가려면 이가 빠진 보도블록 하나에도 쉽게 좌절되던 순간들을, 장애인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던 1시간 30분을 전부 기억한다. 그 어느 것도 ‘몇 시에 도착한다’라고 정할 수 없던 많은 시간을 내 몸이 기억한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래서 기필코 말해야만 했다.
우리는 ‘아직’ 장애인이 아닐 뿐이다. 비장애인들은 정상이라 일컫는 좁은 테두리 안에 있지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벗어난다. 누구나 느려지고, 흐려지고, 멀어진다. 그러니까 잘 걷지 못해지고, 잘 보이지 않아지고, 잘 들리지 않아진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비정상이 아니다. 선천적 질환으로 혹은 사고로, 후천적 질환으로 갖게 된 것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회는 아주 일부의, 아직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들만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것이 점점 심화 되고 있다. 여태껏 그 분노와 설움을 축적하기만 했다. 그러니 이제 정리하고 내뱉어야겠다. 당연해야 하는 것들을 제발 인심쓰듯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천선란
“70도에 가까운 급격한 경사로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