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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주머니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박서련
2월 23일에 출국 예정이었다. 모친이 나하고 해외여행 한 번 해야겠다고 2015년부터 노래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효도를 나도 모친에게 한 번 해야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그 각오는 얼마나 강고했는가 하면 모친이 친한 직장 동료와 그 딸들(각각 올해 한국 나이로 열다섯, 열둘)이 동행한다는 예정을 전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서련이처럼'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아이들이 갈 만한 명소도 있고 온천도 있는 휴양지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검색해서 땡처리 항공권 5인분을 결제했다. (그런데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알아?) 그게 12월 중순의 일이다.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져서 잠깐 누웠다가 돌아왔다. 이유는 다음 문단에 나오며... 예상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여행은 성사되지 못했다. 우리 모두를 통조림으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감염성 질환 때문에. 2월 23일은 아직 출입국 제한이 걸리기도 전이었지만 모친이 사회복지사고 직장은 요양시설이어서 더 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쉽지만 뭐 어쩌겠어. 아쉬움으로 치면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만든 여권을 개시하지 못하게 된 모친 친구 따님들이 더했을 것이다. 온천이나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도망갈 리는 없으니 잘 지내다가 다음에 가기로 했다. 남은 문제는 저가 항공사의 땡처리 항공권을, 그것도 여행사 끼고 산 터라 환불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건 뭐 싼값 밝히다 뒤집어쓴 것으로 치고… 지금은 쿨한 척하며 말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사흘간 하루 평균 다섯 번씩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읍소를 했었다.
그것뿐이면 좋겠지만 아직 더 있다. 3월 중 잡혀있던 현장 행사 두 건이 취소되고 연기되었다. 그 두 건이 나의 3월 기대수입 전부를 담당하고 있었고 …웃기는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왜 나는 울고 있죠? 아무튼 long story short,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코로나19사태가 내 일상을 꽤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열어보라고 할머니가 주신 꾀주머니가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건 없다. (와중에 할머니 말고 내게 꾀주머니를 주실 만한 분이 달리 떠오르지 않아서 할머니라고 해 봤다, 전도사님이나 김혜수님이나 은행장님이 주는 것보다는 할머니가 주는 게 무난하지 않을까?) 있다고 치면 거기에 뭐라고 써 있었을 지를 상상해 본다. “너무 심심하면… 링피트라도 하렴…” 뭐 이런?
(싫어요)
아무튼 아무도 내게 삶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지혜를 전해주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삶을 어떻게든 가누려 애쓰며 지혜(성이 지, 이름이 혜, 본명, 소설가) 언니가 어떤 면접 자리에서 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고 있다.
“잔고가 20만원일 때랑 200만원일 때랑 문장이 달라요.”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람이 꾀주머니가 없어도 살지만 돈주머니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이번 글이 유독 짧은 것은 과금유도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