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외투를 벗기에는 조금 쌀쌀하지만, 한 낮 햇볕이 사무실 깊숙이 들어오는 걸 보니 봄이 오는 것 같아요. 이럴 때 저는 따뜻한 나라로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마침, 안전가옥에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첫 번째 추방휴가를 앞두고 있어서 떠나기 좋은 타이밍이지만, 아쉽게도 큰 복병을 만나버렸네요.
모두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저의 이유에는 도피성이 짙은 편입니다. 여러모로 지칠 때 훌쩍 떠나서 아무 생각없이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금 버틸 힘을 얻곤 했습니다. 저의 가장 길었던 여행은 지중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 보낸 한 달 간의 시간입니다. 우선, 긴 휴가가 주어진다면 바다 근처에 살아보고 싶었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게으른 나라라는 독특한 이력도 마음에 들었고요.
비행기표와 어학원만 등록해둔 채로 버스터미널처럼 작은 몰타 공항에 도착하니, 어쩐지 스산하게 느껴지고 당황스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많이 착각했던 점이 있었는데, 저 낯을 많이 가리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더라고요. 다음 날 암막커튼을 뚫고 들어온 햇살과 바닷가에 마음이 다 풀리긴 했지만요.
오전에는 어학원을 다녔고, 한 낮에는 낮잠을 잤습니다. 강한 해가 질쯤 근처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근처 마트에 가서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들어와서 숙제를 했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면서 잠을 잤습니다. 숙소 근처에 자주 가는 펍도 생겼습니다. 길고 흰 수염을 가졌고, 모두에게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없어졌을까봐 조금 걱정입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가는 길은 기억하고 있으니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음, 그리고 클럽도 몇 번 가봤습니다. 룸메였던 브라질 친구가 춤추는 걸 보고 문화충격을 좀 받고 발길을 끊었습니다만, 아무튼 참 무난하고 온화한 몰타 날씨만큼 평화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자꾸 몰타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떠날 때가 된 것 같은데, 언제쯤 코로나가 잠잠해질까요? 유부녀 4년 차, 지금가면 외로움 느낄 새 없이 잘 지내다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ㅎㅎ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시에나
"사실, 제가 서울 돌아오고 얼마 있다가 BTS가 몰타에서 리얼리티를 찍었다길래 이 아쉬움이 쉬이 가시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