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다가오는 마감일에 맞춰 가장 먼저 원고를 제출하리라 마음먹지만 마감일을 어기고 꼴찌제출을 다투는 지금, 침대에 누워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횡행하는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 집에 주로 머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잘 누워있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모든 걸 침대에 누워서 시작합니다.
미팅만 하고 돌아오면 목이 아프고 기침을 해서 제 자신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사람일까봐 조심하며 칩거하길 한 달, 저는 이제 눕지 않으면 무엇이든 하기 싫은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우선 방을 가득 채우는 침대를 샀습니다. 가로가 160센치 정도인 퀸사이즈고, 높이가 높은 편입니다. 책상도 책도 없는 집에서 살아본 것은 처음입니다. 이 집에서는 잠만 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침이 한창 일 때에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땐 책을 들고 있기도 어렵고 아이패드를 바라보기도 힘든 상태라 뜬 눈으로 동이 트는 걸 바라본 지 10일 째 되던 날, 인터넷을 설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집에 이사온 지 한달 반만의 일입니다. 인터넷을 새로 설치하면서 티비를 받을까 상품권을 받을까 고민하다가 상품권을 받았습니다.
새로 산 침대에서 끙끙거리며 앓는 동안, 통신사로부터 상품권을 받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긴급재난 문자 메시지 소리에 잠에서 깨 클릭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기침이 조금 줄어든 어느 날, 밤 9시 쯤 확진자가 발생한 뒤 폐쇄하고 방역한 청정한 이마트에 방문했습니다. 텅빈 저녁의 이마트에서 31인치 짜리 티비겸 모니터를 구입했습니다. 이 때 부터 제 방콕 라이프, 재택근무기간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와 업무를 잠시 같이 해본 적이 있습니다.
티비를 설치하고 티비에서 소리가 나올 때 깜짝 놀라 리모콘을 놓쳤습니다. 초등학생 때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 드라마를 보거나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독립한 지 꽤 되었지만 티비를 산 건 처음입니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티비에서 파박! 소리가 나며 화면이 켜지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이자 몰입을 알리는 의식이나 다름없습니다.
티비 속 채널은 내가 열심히 보던 때와 다르고, 수도 많아졌습니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서 익숙한 스포츠 중계 채널에 소리와 눈을 고정해둡니다. 홈쇼핑 채널의 상품안내가 너무 신나서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같은 그들의 사용후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지난 한 달간, 엄마, 아빠, 친구들, 동료들을 자주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내가 가져본 것 중 가장 면적이 큰 침대와 티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통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이야기들을 같은 시기에 함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집은 편안하게 이야기에 빨려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요즘 자꾸 퇴근을 빨리 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집에 가면 티비부터 켤 겁니다. 3차 방정식, 2차 함수 같은걸 풀고 멋있는 척 하던 나보다 침대에 누워 티비를 켜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더 마음에 듭니다. 코로나를 피하는 동안,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만끽하고 누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레미
"침대생활자 1달 만에 더 좋은 침대프레임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