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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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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입안에서 금맥을 발견한 후, 얼음 씹어먹기 금지령이 떨어졌죠?
대략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나는 동안 저는 딱딱한 음식과 얼음을 멀리하며 잘 지내고 있었어요.
사실 얼음을 못 먹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어요. “얼음 씹어먹지 말랬지 찬물 마시지 말란 말은 안 했잖아?” 하면서 각종 얼음이 들어간 차가운 것들로 속을 달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8월의 네 번째 주말이 지나자 그 차가운 음료마저 금지령이 내려집니다.
차가운 것 뿐만이 아니에요. 건강상의 문제로 금지된 것들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찬물 금지, 커피 금지, 빵 금지, 음주 금지, 밀가루 금지, 튀긴 것 금지, 맵고 짜고 자극적인 것 금지, 기타 등등 금지. 금지. 금지.
주말 내내 경련하던 위에 내시경 카메라를 넣고 보니, 구멍이 뚫리기 직전인 참담한 상태더라고요. 십이지장도요. 그러니 당분간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의 팔 할은 금지! 금지! 금지! 상태가 된 거예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니... 미지근한 물을 먹으라는 게 말이 되나요? 미지근한 물에서는 물비린내가 난다구요! 물은 차가워야 한다구요! 미지근한 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요!!!
커피요? 맞아요, 커피는 안 마셔도 돼요. 사실 저는 커피에 한해서는 막입이라 그냥 진하고 시원한 아아라면 아무거나 마셔도 “크!!!”하거든요. 아아는 원래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카페인 충전을 위해 먹는 거잖아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원고를 쓸 수가 없다고요! 커피는 일할 때! 차는 쉴 때!
그리고 세상에, 빵순이한테 빵을 먹지 말라니요? 세상에 달콤한 디저트가 얼마나 많은데! 밥보다 맛있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빵이 얼마나 많은데! 구움과자가 세상을 구하는 건데!
물론 이 말을 모두 의사 선생님 앞에서 하지는 못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저를 몹시 한심한 눈으로 보시며 “제가 작년에 건강검진 때도 똑같이 말씀드렸는데.......” 라고 말 끝을 흐리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금지령이 떨어진,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으려니 왜 이렇게 서러운지 모르겠어요.
그치만 전 매우 몹시 쫄보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하지 말란 건 안 하거든요.
커피금지령에 충격을 받은 저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냉침차를 두 병 만들기 시작했어요. 냉침으로 우린 차지만, 마실 때만 차갑지 않으면 되잖아요? 물론 차를 선택할 때는 신중하게 카페인이 없는 것들로 골랐어요. 그리고 차를 보관하는 수납장 한쪽에 곱게 쌓여있는 홍차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었죠. 진료가 끝나고 선생님의 방을 나오기 직전, 문고리를 잡은 채 여쭤봤거든요.
“선생님, 그럼 홍차는.......”
물론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입을 닫았죠. 선생님께서 “그게 되겠니?” 하는 눈빛으로 절 보셨거든요. 맞아요, 사실상 이건 카페인 금지령이었던 거죠.
세상에 인생아... 어떻게 카페인 없이 게다가 빵도 없이 마감을 버티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달에는 마감을 버티게 하는, 이제는 금지된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 해야겠어요. 서두가 너무 길었던 것 같은 느낌이라면 그건 기분탓입니다. 괜찮아요, 본론은 짧게 끝낼 거예요. 내일이 마감이라 말을 길게 하고 있을 시간이 없거든요.
홍차와 우롱차 중 어떤 걸 더 좋아하시나요? 아, 혹시 둘다 싫으신가요?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예전에 제가 어릴 땐 캔으로 나오는 우롱차가 있었는데요, 저는 그 캔으로 우롱차를 처음 마셔봤거든요. 근데... 니맛도 내맛도 아닌 요상한 맛이더라구요. 그 후로 우롱차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어요.
홍차도 비슷한 루트로 선입견을 가진 채 시작했죠. 홍차는 떫은 거잖아요? 쓰고.
차의 향과 맛에 눈을 뜨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종로 2가(어쩌면 3가) 어드메에 피아노거리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거든요. 바닥에 피아노 모양으로 조형물이 있는, 주말이든 평일이든 젊은이(!)들이 떼로 모이는 그런 곳이요. 거기서 찻집을 발견한 거예요.
생각해보면 그 찻집을 간 것도 우연이었어요. 그냥 모든 게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날이 있잖아요. 원래는 다른 카페에 가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그 찻집으로 간 거죠.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우롱차와 홍차 맛을 알게 됐어요. 숙련된 직원분이 직접 오셔서 예쁜 다구에 착착 준비해주신 차의 맛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몰라요. 그 후 얼마간 그 찻집은 저와 친구의 아지트가 되었어요.
그날 이후 저는 한 번 꽂히면 끝을 보는 성미답게 온갖 차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취향을 점점 알게 됐어요. 홍차와 우롱차는 오케이, 보이차와 녹차는 노노. 이런 식으로요. 그런 시간을 거쳐 지금은 선호하는 브랜드 몇 개와 특히 사랑하는 다원의 차가 생겼어요.
홍차와 우롱차를 위해 갖추고 있는 다구도 꽤 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전기포트에 물을 올립니다. 잠을 쫓는데 홍차만한 게 없거든요. 이 덕질의 최종 목표는 스리랑카 다원 투어를 하는 것이고요.
아니 잠깐... 저 지금 빵 얘기도 해야하는데, 왜 벌써 분량이 이만큼이나 된 거죠? 어쩐지 이번달엔 특히나 더 중언부언 횡설수설 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아요. 원고 마감을 앞두고 카페인도 빵도 없이! 아이스크림도 없이! 이러고 있으니 조리있게 말이 나올 리가요.
그러니까 결론이...
건강을 챙깁시다. 미리미리. 그래서 금지된 것 따위는 없이! 빵도 먹고 차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그래요, 이번 달의 결론은 이게 좋겠어요. 어딘지 건설적이고 바람직하게 느껴지잖아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이재인
"1. 우롱차 캔은 이제 안 파는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아직 있더라구요. 2. 찻집은 없어졌어요. 지금은 이름을 바꾸고 아예 커피와 식사 위주인 그 옛날의 경양식집 같은 느낌으로 영업을 하는 듯해요. 3. 제가 제일 사랑하는 차는 마거릿 호프 다원의 세컨 플러쉬 다즐링, 케닐워스 다원의 딤불라, 러버스 리프 다원의 누와라 엘리야, 마오콩 요월다방의 목책철관음과 금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