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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YG전자>에서 <나의 이야기>까지

콘텐츠
YG전자
나의이야기
해나개즈비
넷플릭스

<YG전자> 1화에서 이재진이 “아 X나 재미없네. 다들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요.” 뭐 이 비슷한 대사를 하더군요. 어쩜 이렇게나 시청자의 마음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대사인지. 결국 저도 넷플릭스 화면을 끄고 샤워 한 번 하고 침대에 누워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재진 씨, 고마워요.

출처: 넷플릭스 공식 네이버 포스트
<YG전자>는 YG패밀리 소속 연예인들이 나와서 한심한 꽁트를 반복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예요. 이미 다 아시겠지만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언뜻 보기에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다큐멘터리의 기법을 활용하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닌 연출된 상황을 담은 작품들을 말해요. 모큐멘터리라 부르기도 하지요. <모던 패밀리>나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 그리고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정도가 예시가 되겠네요.
이러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서사를 진행함에 있어서 무척 편리한 방식이에요. 아예 작품 안에서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하여서 등장인물의 속내를 밝히기도 하고 CCTV나 블랙박스에 촬영된 영상 등을 이용해 별다른 기법 없이도 간단하게 현장성을 담아내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이 뉴스나 다큐멘터리 또는 스트리밍 방송에 친숙해졌기에 가능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YG전자>는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갖는 그 특색 덕에 만듦새의 엉성함이 두 배, 세 배는 더 잘 보이게 되었으니 영 민망한 노릇이 아니더라고요. 인터뷰를 통해 등장인물의 행동에 논리와 일관성이 없다는 것만 보이고 작위적 꽁트와 현실적 다큐의 톤이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만 나오니까요.​
사실 만듦새의 엉성함이야 한국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가 그렇게 자주 시도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어떻게 넘어갈 수 있지 싶기는 한데요. <YG전자>는 그 만듦새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어요. 바로 경직된 기업문화의 수직적인 권력관계에서 오는 폭력을 날 것으로 전시하면 그게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해괴한 접근 말이지요.

<YG전자>의 1화는 비품을 달라는 요청에 면박을 주는 직원이나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선배/상사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이지메하는 내용만 나와요. 양현석은 승리를 괴롭히고 승리는 부하직원을 괴롭히고 유병재는 모두에게 괴롭힘 당하고. 권력이 있는 누군가가 자기보다 약한 다른 누구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웃어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그런 연출로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웃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출처: 넷플릭스 공식 네이버 포스트
온라인에서 고구마-사이다의 썰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요. 고구마처럼 답답하고 목 메이는 상황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이야기들이요. 이조차도 너무 나이브한 도덕관에 왜곡된 정의감만 심어준다고 비판을 들었는데 <YG전자>는 최소한의 체면을 챙길 생각도 없이 그냥 고구마에 고구마만 남발하면서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재미난 사람이라는 듯이 굴고 있으니 이 어찌 아니 답답할까요.​
위에 예시로 든 <모던 패밀리>나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 그리고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와 같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작품들에는 그 기법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부족한 면이 있지만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으며 에피소드의 마지막에서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교훈을 배워 성장한다는 것이에요.
이 공통점이 단순한 우연일까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특색은 역시 그 다큐멘터리적인 연출이 주는 사실감과 친근함에 있겠지요. “아, 이런 이야기 있을 법도 한 것 같아!”라고 보는 사람이 기꺼이 속아 넘어가게 되고 화면 속 등장인물들을 나의 이웃처럼 여기게 되니까요. 그런데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약 올리고 겁주고 협박하는 사람들이랑 이웃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 자신처럼 어딘가 어수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누군가와 더 있고 싶지 않겠어요?
달리 말해 저는 <YG전자>의 등장인물 중 그 누구와도 뭘 하고 싶지 않아요. 하다못해 식사는커녕 지하철의 옆자리에 앉아서 다섯 정거장 정도 동석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요. 심술과 짜증으로 가득한 미성숙한 인간군상 사이에 제가 뭐가 아쉽다고 앉아 있어야겠어요? 저와 제 주변의 미성숙함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지쳤는데 말이지요.

<YG전자>는 재미와 윤리가 반비례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만들었을 때 나오는 실수가 자꾸 눈에 띄어요. 배려나 존중이 들어가면 재미가 없으니 이를 가능한 배제한 뒤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상황을 반복해서 제시하면 더 웃길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계산을 하는 사람들 특유의 헛발질들 말이지요.​

애초에 약자가 강자를 조롱하면 풍자가 되지만 강자가 약자를 조롱하면 폭력이 되지요. 둘이 똑같이 놀렸으니까 다 같다는 식으로 보면 결국 약자의 강자를 향한 저항에는 연대하지 않으며 강자가 약자에게 저지르는 폭력을 용인하는 결과로만 이어질 뿐이에요. 그렇기에 농담에는 정치적인 지형도와 역사적 맥락을 가늠하는 시야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합니다. 풍자와 폭력을 구분하기 위해서 반드시요.
하지만 <YG전자>의 제작진이 이 기초적인 인식을 갖췄는지 의심스러워요.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을 반복하고 이러니까 웃기지 않느냐면서 계속해서 위악적으로 구느라 과욕을 부리며 주변에 피곤함만 더해주는 그런 장면을 보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냥 날것의 폭력을 전시하고 어떤 당위나 맥락이나 반성 없이 그저 추하기만 한 상황을 반복해서 보이면서 너무나도 신이 나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서사는 논리를 요구하고 논리는 성장으로 이어지며 성장은 윤리에 가닿기 마련입니다. <YG전자>의 꽁트나 썰들은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니라 <라디오 스타> 등의 예능에서 떠드는 소재로는 충분히 기능할지도 몰라요. 이런 썰들은 그 길이 상 필연적으로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일정한 분량 이상의 이야기는 그보다 더 나아가지 않고서는 물리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아요.

해나 개즈비는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 <나의 이야기>에서 이제 코미디를 관두겠다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제 생각에 저의 문제는 코미디 때문에 아직까지도 청년기에 머물러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이 매번 농담이죠. 농담과 달리 이야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해요.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이 필요해요. 하지만 농담은 딱 두 가지만 필요하죠. 서론, 본론이요.”​

그리고는 웃음이나 분노가 아닌 이야기가 갖는 힘, 소통을 통한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농담은 고통의 쓴맛을 지울 뿐이지만 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면서요. 예능에서의 토크와 서사가 요구되는 작품 사이에 뒤따르는 차이 역시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결론이 필요하고 그 결론은 누군가가 철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웃으며 봐줘도 된다는 내용에 만족할 사람은 많지 않아요.
출처: imdb
어떤 사람들은 작품이 갖는 사회적 의의에 대한 비평이 보기 싫을 때마다 저들이 창작의 자유를 무시하고 탄압한다면서 화를 내고는 하더군요. 아니요, 이는 창작의 자유와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결론을 말하는 것이 고급스럽지 않다는 편견에 의해, 결론을 말했다가 반론을 듣는 것이 두렵기에 결론이 나와야만 하는 이야기에 결론을 배제하고 서사를 성립시키지 못하는 무책임한 겁쟁이 짓일 뿐이지요. 자신들이 내린 결론의 조야함을 은폐하려고 했거나 혹은 결론을 내려야한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거나 어느 쪽이든 전부 말이에요.
<YG전자>는 시즌2를 예고하며 막이 내리더군요. 시즌2가 제작이 무산되지 않는다면 부디 시즌1의 해괴한 전제들부터 바뀌고 나오기를 빕니다. 부디 시즌1에 대한 비판이 창작의 자유를 무시한 비판이라거나 해외라면 규제가 없어서 얼마든지 통용되었을 농담에 괜히 민감하게 반응한 비판이라는 식으로 착각하지 않기도 빌고요.

dcdc가 소개하는 좋은 이야기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토니 야엔다 <아메리칸 반달리즘>
글. dcdc "<YG전자>는 아예 음소거하고 자막만 넘겨가며 봤어요.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는 건 진짜 고료를 엄청나게 받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 같네요."
편집. May(김미루) "승리가 박봄 갈구는 에피소드는 또 어떻고요... 저의 어릴 적 우상들은 이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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