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27호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내 애인이 군 생활 중이라는 사실을 밝힘. 아무도 관심 없으셨겠지만 아무튼 공개는 했습니다. 밝히게 된 계기가 참 소설가답지 않은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 채널예스에서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연재했던 짧은소설 가운데 “꾸나(군화)” 애인을 둔 30대 여성이 서술자로 등장하는 <아이디는 러버슈> 편이 유독 반응이 좋았고 인터뷰 질문으로도 그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얘기가 나와서 바로 제가 30대 “곰신(고무신)” 이라는 사실을 고백함 — 그건 그렇고 나의 애인 — <아이디는 러버슈>를 보고 신이 나서는 곰신꾸나 시리즈를 좀더 써달라고 주기적으로 조르는 녀석 — 은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로 마지막 휴가를 8월에 나왔으며… 눈물이 나서 이 문장은 제대로 끝을 맺을 수가 없군요.
좀더 어릴 때는 당시 애인 얘기를 수상소감 같은 데에 쓰는 것에 거침이 없었는데 저도 이제 서른이 넘고 해서 (기분은 아직 응애지만) 공개적으로 애인 얘기 같은 것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학습했으니까…) 애인이 군인이 되니까 나의 생활 이야기를 할 때 얘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가령 요새 군인들은 평일 오후 5시경부터 8시 20분까지 (주말에는 오전부터, 마감시간은 동일) 개인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한데 덕분에 무슨 전화영어라도 하듯 매일 저녁 얘랑 대화하고 (실로 전화영어를 매일 3시간씩 하면 타일러처럼 스무스한 스피킹 실력을 갖게 될 텐데) 있는 점, 뭐 그런 거? 사실 듣다 보니 좀 재밌는 부분도 많아서 (애인이 재미있게 얘기해 주는 것도, 실제로 대단히 재미있는 사실도 아니지만 그냥 내가 약간… 돌아서… 없는 재미를 착즙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애인한테서 들은 얘기를 꺼내게 될 때도 있다. 오늘 하려는 얘기도 약간 그런 편.
요새 군대에는 게임방이라는 것이 있고 여기에는 “인터넷에 연결할 수 없고 싱글 플레이로만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있다고 하는데 애인의 부대 게임방에는 <디아블로2>(이하 디아2)가 설치되어 있다는 모양이다. (이 정도 얘기는 군 기밀 누설 아니겠지? 모 부대 게임방 컴퓨터에 디아2 있다는 얘기로 잡혀가는 거 아니겠지?) 안그래도 애인은 군대 가기 전까지는 나의 가장 가까운 겜친이었고 (지금은 그냥 겜친이 없는 상태) 같이 <디아블로3>를 하는 동안에 종종 나한테서 “게임하는 재미는 디아2가 정말 대박이었지” 라는 식의 꼰대 발언을 들어왔던 터라 디아2에 흥미를 보였다. 흥미만 보이고 사실 안 한 것 같은데 (하게 된다면 바바리안을 키울 거야 정도의 말만 했다) 나는 애인하고 통화하면서 디아2 얘기가 나오자마자 배틀넷을 켜고 디아2를 샀다.
게임하는 재미는 디아2가 정말 대박이었지… 라는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켰다 하면 캠페인 끝까지 달리게 되는 재미가 디아2에는 있다… 그래픽도 구리고 음성 한글화도 안 되어 있고 후속작보다 훨씬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지니고 있지만 어쩐지 한번 켜면 끌 수가 없다. 아장아장 걸어오면서 독을 뿜어대는 안다리엘이나 장비 제대로 맞추는 법 모르던 어릴 때 (소서리스한테 석궁을 장착시켜 다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마법소녀와 활을 좋아해서…) 끝내 돌파할 수 없었던 보스들이며… 뽈록뽈록거리면서 포션 마시는 소리며… 호라드림박스로 활력포션 합치는 보람이며… 네임드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의 효과도 그 구린 그래픽 수준에서 최대치의 불온과 퇴폐를 전력으로 추구한 느낌이 나서 넘 좋고요… “라카니슈"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펄른(후속작에서는 몰락자로 번역됨)들도 귀엽고…
이렇게 몰입하여 2주 정도 게임을 한 결과 오른눈 시력이 -3.75에서 -4.0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경 다리 도금이 벗겨져서 관자놀이에 자꾸 트러블이 생기는 탓에 안경원에 갔다가 안경테만 고치면 될 일이 아니라 안경을 아예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충격이었다… 시력이 지난 10년간, 10년이 뭐람, 고1때부터 크게 나빠진 역사가 거의 없었는데. 내가 나이를 먹나보다 생각하다 마음을 고쳐먹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나면 반드시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빈정상해하는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디아2를 탓하기로 결심한 것이고 나는 어디다가 “요새 무슨 게임에 빠져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면 급격히 흥미를 잃는 편이니까 디아2 끊으려고 이 글을 썼습니다.
잠깐만… 수상소감 같은 데에 애인 얘기 쓰면 꼭 헤어지는 것도 혹시…?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쓴 나머지 저도 이 글의 토픽이 뭔지 한참 고민했는데 역시 시력 감퇴 얘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