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김없이 물 한 잔을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나나를 입에 넣어 우걱우걱 씹었죠. 마지막 한 입을 마무리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려는 찰나 ‘오늘은 뜨거운!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퉁퉁 부은 얼굴로 이런 생각부터 하다니.. ‘아이고, 기훈아’를 육성으로 내뱉었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게 아침부터 꽤 행복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직장인이 점심 메뉴를 떠올리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이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몇 년간 저는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겨 먹은 적이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참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게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머금고 출근했습니다. 그리고는 레미, 테오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죠. 무엇이든 먹어도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날이라 라멘을 먹기로 했으나, 가려고 한 식당이 메뉴 개발차 문을 닫아 그 근처에서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매콤한 김치찌개가 정말 맛있어 그날따라 밥을 더 꿀떡꿀떡 넘겼습니다. 굳이 라멘같은 걸 먹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이날은 그 자체만으로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이런 기분을 느끼니 그저 제가 먹고 싶은 메뉴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이렇게까지 될 일인가.. 싶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 들은 팟캐스트가 떠올랐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없는 것도 일종의 우울함의 표현일 수 있다고요. 당시에 들을 땐 나도 그런 것 같은데..라는 생각 정도였는데, 제 무의식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제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OO가 드시고 싶은 거 먹어요!, 딱히 땡기는 게 없네요. 그거 좋아요.’가 어쩌면 저도 몰랐던 함의였나 싶기도 하고요. 분명 사회 생활적(?) 표현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예전 같았으면 휴일에 치밥, 계란밥, 고기밥과 같은 자취생 혼밥메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음식을 주문하고 섭취했을 텐데요. 요즘은 배가 고프면 무슨 메뉴를 먹고 싶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되도록이면 또 먹을 게 없네 하면서 시키는 치킨이 아니라, 오늘은 월남쌈이 먹고 싶으니까. 파스타가 먹고 싶으니까. 된장찌개가 먹고 싶으니까.
이렇게 적고 나니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게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쿤
"누군가는 먹는 재미로 산다고 하는데.. 저도 그 재미 느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