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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를 위한 나라는 없다?

분류
가디언멤버
작성자
OU
Written by 가디언 멤버 OU
정치적 올바름 꿈나무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써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소소한(?) 논쟁들을 하다 보면,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 예전부터 마찬가지기는 했지만 현실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 수록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는 것이다.
일단 합리란 무엇이냐 한다면, 논리적 원리나 이치에 잘 합당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논리적 원리와 이치가 무엇이냐 한다면,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오류나 모순에 빠지지 않는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보면 합리적인 사고만큼 우리의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게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인가보다.
왜 합리의 인기가 이렇게 바닥을 쳤는가를 생각해보니, 일단 몇가지 허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로, ‘충분한 과학적 근거’에서 볼 수 있듯이 합리는 본인의 사고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수집하는데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얼마나 많은 통계 자료와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하는지를 고민하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힘들고 바쁘지 않은가.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이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표본은 몇 명이고 국가 사회 문화 별로 변수는 고려했느냐’라고 물어보는 내가 잘못이지.
두 번째로 ‘오류와 모순에 빠지지 않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너무나 재미없는 이야기이다. 멀게는 트럼프의 연설, 가깝게는 한국의 수많은 정치 유튜브들을 보면 간단히 증명된다. 사실 알고 보면 수많은 잘못된 정보와 논리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지만, 적어도 듣기에는 간결하기 그지없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들의 선동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갖고 있는 곪아 들어가는 수 많은 문제들은 외면하고, 외부에 적당한 대상을 물색하여 그 곪아 들어온 문제에서 야기된 고통과 분노를 퍼붓도록 유도한다. 이 어찌나 카타르시스적인가. ‘빌 게이츠가 카길과 몬산토에 투자해서 전세계 인구를 조절하려고 한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술, 담배, 설탕 회사가 죽이는 사람 숫자가 훨씬 많지 않은지 지적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합리에 대한 천대’가 문화를 통해 재생산되고 교육된다는 것이다. ‘이론과 문서만 중시하는 싸가지 없는 엘리트 합리주의자가 무례하지만 정 많고 야성적이고 충동적인 촌부에게 참교육당한다’는 이미 수 없이 각종 문화 매체를 통해서 반복된 클리셰이다. ‘야성적이고 충동적인 촌부’가 드라마틱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빈도와, ‘이론과 문서’만 중시하는 엘리트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빈도의 차이를 봤을 때 압도적으로 전자가 많은 것을 보면, 이건 이제 단순히 컨텐츠 기획자의 의도를 넘어 명백한 시장의 취향에 가깝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렇게 합리적 목소리들이 배제되고 드라마와 흥미로 사람들이 의사결정하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이미 수많은 문화 컨텐츠들에 의해서 상상되어 왔다. 내 페이스북 피드를 휩쓸고 있는 HBO의 <이어스 앤 이어스>가 가장 최근의 예일 것이고, 이러한 현상을 의도적으로 기획하여 ‘문화 테러리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한 넷플릭스 <메시아>도 좋은 예일 것이다. 아니면 더 다크하게는 스티븐 킹의 <미스트>에서 카모디 부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돌변할 수 있는지를 봐도 되고.
미지의 영역에 있던 지식과 정보를 알아가면서 배움에 환희를 느끼고 그 것으로 모르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지 알려주는 문화 컨텐츠가 있으면 좋겠다…는게 얼마나 노잼으로 들릴지는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대중문화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이른바 ‘합리충’들을 재부각시켜 줄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 그러고보니 최근에 추천 받기로는 <스토브리그>가 이에 해당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가디언 멤버 OU
"…그리고 <스토브리그> 반대편에, 이들을 고문하기 위한 컨텐츠로 <이태원 클라쓰>가 있다고 했던 것 같네요. 시가총액 2,000억 대재벌 장가…쩜쩜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