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생 시절, 저는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차이야(チャイヤ)’라는 곳인데 차이(Chai)라는 차를 파는 가게라는 뜻입니다. 남북으로 길고 천장은 높은 독특한 건물에 내부 분위기도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한 곳이에요. 주요메뉴는 차이와 커리. 카레가 아니라 커리라고 한 시점부터 약간 고집이 있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차이야는 세 명의 대학생이 시작한 가게였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청년 세 명이 동아시아와 인도를 여행하며 먹고 마시고 주방을 엿본 기억을 되살려 식당을 차린 게 그 시작이었지요. 거의 40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서 식당 안에는 40년 된 물건들이 가득해요. 식탁이나 주전자, 그릇, 그림, 사진 등등.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점장이 두 분이었습니다. 한 분은 오래 전에 그만 두고 두 분이서만 수십 년 째 가게를 운영해 온 거지요. 여행과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제외하고는 공통점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두 점장이 작은 가게를 그렇게 오랫동안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건 바로 음식입니다. 누가 제게 지금까지 먹어 본 최고의 음식을 고르라고 하면 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차이야의 슈림프코코넛커리와 달마살라커리를 고릅니다. 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슈림프코코넛커리를 고르겠어요. 음. 하나를 고른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네요. 이것 말고도 차이야의 커리 메뉴는 정말 훌륭합니다. 나중에 이런 저런 커리 식당을 방문했지만 차이야 만큼 좋은 곳이 없었어요.
아르바이트 시급은 높지 않았어요. 하지만 근무 중 식사로 차이야의 메뉴 중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었죠. 커리 한 끼가 1만원 전후였기 때문에 시급 낮은 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커리가 너무나도 맛있었기 때문에 제 인생 최고의 아르바이트였어요. 일 하러 갔을 때마다 공짜로 먹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유학생이 지갑을 털어가며 따로 먹으러 갈 정도로요. 심지어는 어느날 이른 오후까지 일하고 커리를 먹고 퇴근하고는 같은 날 저녁에 손님으로 가서 먹기도 했고요.
대학원을 대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버린 후에도 저는 야간고속버스를 타면서까지 1년에 한 번은 차이야에 갔어요. 기념으로 가져온 메뉴판도 있어요. 거짓말 안하고 요즘에도 가끔 차이야에 가서 커리를 먹는 꿈을 꿉니다. 항상 커리를 입에 넣기 전에 깨고 말지만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는 아직 가지 못했어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나고 좀 정신이 없었죠. 그러다가 2019년 12월, 주말치기로 차이야에 다녀올 생각을 했어요. 비행기 값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일이 좀 밀려서 2020년 봄에 다녀오는 걸로 생각을 바꿨죠.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망할.
어휴.
2021년에는 가능할까 싶었는데 고통스러운 희망일 뿐이었네요.
점장님 한 분이 지병으로 은퇴해서 이제 마지막 한 분이 운영을 하고 계시는데 부디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로도 오랫동안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혹여나 다시 차이야를 찾아갔을 때 슈림프코코넛커리를 맛볼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어떤 사람들을 심히 원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슈림프코코넛 커리
달마살라 커리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해도연
"슈림프코코넛커리에 고수 잔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