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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2020년 8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빌런인데.. 살다보면 가끔 생각나는 빌런"이라는 주제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현실의 누구를 보면 너무 닮아서, 빌런이지만 이 시대에는 '사이다'가 되어 줄 것 같아서, 실제로 있을 것만 같아서, 그냥 너무 무섭고 싫어서, 아니면 나를 닮아서(?) 생각나는 그 빌런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테오의 빌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영화

폭력의 풍경, 안톤 시거 그리고 홀든 판사

월간 안전가옥의 이번 달 주제, ‘살다 보면 생각나는 빌런’을 접하자마자 떠오르는 빌런, 악당은 꽤 많았습니다. 〈미스트〉의 정말 짜증 나는 ‘카모디 부인’ (우리는 지금, 현실 카모디 부인을 코로나19로 인해 만나볼 수 있군요)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 빌런의 새로운 서사를 창조해낸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그를 이어받은 〈조커〉 등 여러 악당 중에서도 가장 생각나는 악당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였습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그 단발머리 사이코패스 킬러를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면서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가슴을 졸이며 보았던 기억이 아주 생생합니다. 그러나 영화와 안톤 시거를 얘기하기 전에 원작자인 코맥 매카시의 다른 소설 속 인물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핏빛 자오선》, 자정부터 정오 너머로 흐르는 핏빛
2008년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의 성공으로, 그동안 번역되지 않았던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이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영화와 비교할 수 있도록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가 책으로 먼저 나왔고, (둘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영화화된 다른 소설 《로드》도 나와서 꽤 큰 인기를 구가했고, 개인적으로도 정말 감명 깊게 읽었었죠. 아무튼 그의 소설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벽에 부딪혔습니다. 당시 최신작이던 《핏빛 자오선》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굉장히 당혹스러웠죠. 그래도 좀 읽는다 자부했던 시절이었는데, 도저히 읽어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문장 하나하나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듯 했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폭력의 풍경, 살육, 생존을 위협하는 고통과 위협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더불어 한 번에 소화 시킬 수 없는 빛나는 문장과 문장이 쉼없이 이어져서 도저히 독파할 수 없었던 이 책에는 여러 살육자, 무법자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홀든 판사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19세기 약탈과 폭력과 무법으로 가득했던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무엇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단순히 폭력을 미화하거나, 잔혹함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제목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오선, 자정부터 정오를 흐르며 가는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을 핏빛으로 가득 채우는 재앙 혹은 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14살의 소년은(그는 긴 시간 동안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 가출하여 서부지역을 떠돌다 민병대장 글랜턴과 홀든 판사를 만나 ‘인디언 머리가죽 사냥꾼’이 되는데 30년간의 핏빛 여정 끝에 마지막에 다시 홀든 판사를 대면하게 되는데요. 저는 무엇보다 이 홀든 판사가 주인공에게 건네는 말, 이야기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이 책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자 칸트에 따르면, ‘악’은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간 본성의 허약성, 두 번째는 인간 의지의 불순함.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악(근본악)입니다. 이 개념을 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는 홀든 판사를 일종의 근본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홀든 판사의 세계는 인간성이라는 것은 결코 작동하지 않는 세계였고, 저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풍경이 된 얼굴
다시 영화와 안톤 시거로 돌아오면, 시거는 홀든 판사 그리고 코맥 매카시의 서부 세계를 잇는 인물이란 걸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시거의 폭력성, 그 알 수 없는 재앙과도 같은 규칙은 시간을 넘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1985년에 쓰인 《핏빛 자오선》은 19세기 미국 남서부를 다루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20세기 미국 남서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이 아닌 코엔 형제의 영화를 통해 코맥 매카시가 구현하고 있는 악은 드디어 더욱 구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 안톤 시거의 알 수 없는 위협, 폭력의 기운을 잘 표현해내고 있는 장면 중에 휴게소 주인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 하나만 묻지, 동전 던지기로 가장 크게 잃어본 건? 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 그리고 캐틀건으로 웃으며 살인을 하는 장면에서 그의 얼굴은 일종의 풍경이 됩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점점 더 통제 불가능한, 탈마법 이전의 마법과도 같은 야만과도 같은 자연, 그 자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고만 표현하기 어려운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그의 캐틀건은 문으로 표상되는 우리의 얄팍한 문명 혹은 사회 자체를 아주 간단하게 무너뜨리거나 침입하여 또한 아무런 감정도 없이 누군가에겐 폭력일 수 있는 일들을 행사하는 물건이자 그걸 들고 있는 안톤 시거의 얼굴은 단순히 정물화같은 모습이 아닌 꿈틀꿈틀 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재앙,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의 풍경이었다고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이건 코맥 매카시의 글에 코엔 형제의 시각이 더해져 더욱 인상 깊은 빌런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악당에는 굉장히 다양한 유형이 있고, 그중에는 아주 매혹적인 악당, 빌런도 있지요. 하지만 코로나19 라는 실체적인 위협과 공포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가운데 그러한 재앙을 어쩌면 표현하고 있을지 모르는 이들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칸트가 한 다른 말을 남기고자 합니다.
“번개와 천둥소리가 동반되는 하늘, 파괴적 힘을 가진 화산, 지나간 자리를 황폐화시키는 허리케인…… 이러한 것들 중 어느 하나에 비교할 때 우리의 저항 능력은 중요치 않은 하찮은 것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의 광경은 더 두려운 것일수록 매혹적이다. 우리가 안전한 장소에 있는 한 말이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테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다시 보는데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정말 계속 깜짝깜짝 놀라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