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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와 레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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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꽤 먹었다. 일을 한 지도 십 년이다. 서로 점점 멀어/벌어진다. 시간은 무섭다. 초중고 12년 동안의 ‘말 잘들음 정도’에 따라 대학 4년이 갈리게 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인데, 대학 졸업 이후의 하루하루가 만들어내는 차이는 더 무섭다. 준거집단의 선택을 따르던 시절을 지나, 오로지 자신이 리스크를 택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일이란 십 년이 지나도록 편안해지지 않는다.
특별할 것 없는 해넘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원더키디 운운하는 오래된 농담 때문이기도 했고, 19년에서 20년으로 넘어가며 자릿 수가 하나 바뀌었기도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일한지 10년이 넘어가는 그런 해였기도 했으니까. 안그래 매해 마무리가 다가올 때면 이런 저런 정리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곤 하는데 지난 연말은 특히 그랬다. 어느 정도 센치해지기도 했고, 꽤 무섭기도 했다.
지난 달에만 몇 차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친구들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점점 나뉘는 것 같다고. 20여년 전 그래도 비슷비슷한 모습이던 동기들이 많이 달라졌다. 외양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달라졌다. 달라짐의 정도는 점점 강해진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달라지기 시작한 건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증권 시장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선수가 되었다는 친구. 회계사 시험에 몇 차례 낙방하더니만 갑자기 인터넷 강의 강사가 되어 인기스타가 되었다는 친구. 외국계 회사에서 마케팅하더니 갑자기 필라테스 강사가 되었다는 친구. 갑자기 코딩을 배워 개발자가 되더니만 발리로 떠난다는 친구. 스타트업을 차려 승승장구 한다는 친구, 회사 다니며 하던 투자가 잘되어서 전업으로 나선다는 친구 등등.
주로 커리어 쪽의 예를 들긴 했지만 사실 모든 영역에서 이 현상은 일어난다. 어느 순간 리스크를 지고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그 차이가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고, 그 선택은 또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이 차이는 (마치 복리처럼) 반복되어 쌓이고, 시간이 지나고 이 반복이 계속되면 그 차이는 돌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벌어진다. 마치 처음부터 달랐던 것처럼.
학창시절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다들 고만고만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넘어갈 때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대학교 이후부터, 정확히는 우리가 스스로의 진로에 뭔가 변화를 꾀할 수 있게될 때부터는 좀 달랐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온전히 자신이 스스로를 선택할 수 있을/ 선택 해야만 할 때에는 그 격차라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쌓이고 벌어진다. 뒤돌아보면 더더욱.
재무나 회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설명할 때 ‘레버리지’라는 용어를 쓴다. 변동의 폭이 (양의) 상수에 가깝다면 변동의 모수가 되는 자산을 리스크를 지고 크게 불려서 변동의 결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뭐 이리 말하니 좀 복잡한가 싶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쉽고 직접적인 예시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이다. 대출 이자를 내는 비용보다, 집 가격 상승 폭이 클 것이라고 믿고 리스크를 떠안는 것.
중요한 것은 ‘리스크’와 ‘선택’이다. 한 시장의 기대효익은 그 시장의 변동성에 비례한다. 자산의 수익률은 시장의 리스크에 비례한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치면 피할 수도 있다. 리스크는 그 자체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리스크를 지고,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때, 레버리지는 그 보폭을 넓힌다.
최근 몇 달 법인격이라는 존재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법인도 개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순간의 선택들이 쌓여 한 때 고만고만했던 법인들의 자리가 점점 벌어진다. 더 무서운 것은, 법인의 변화는 법인에 속한 개인들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법인과 그렇지 않은 법인 사이의 차이보다, 각 법인에 속한 개인 사이의 차이는 더 크다. 위에 말한 레버리지가 겹쳐지면 겉잡을 수 없다.
뭐 리스크는 고통이고 레버리지는 그 자체로 부담인 것은 맞긴 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리스크를 조금씩 짊어지면, 내가 나아갈 수 있는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가지 못했던 곳을 한 발씩 더 갈 수 있게 된다. 그 때 신입생 환영회에 함께 있던 우리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 이 여정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결국 리스크와 레버리지에 달렸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뤽
"물론 베팅의 승률은 반반 이하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