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도 모자라 이제 샴푸향으로까지 연금을 받게 됐다는 그 분의 노래들처럼. 산에 들에 피는 꽃만 보면, 코 끝을 스치는 봄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바로 그 장면, 그 이야기.
2021년 3월 월간 안전가옥의 주제는 '봄에 생각나는 그 콘텐츠' 입니다.
교과서에 기록될 역병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봄이라고 멋도 내고,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서 있는 힘껏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4월이에요. 마스크도 봄바람을 막을 순 없나 봐요. 4월 1일은 장국영이 사망한 만우절이고, 장범준은 이달에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겠죠. 제게 봄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벚꽃 사진을 찍고 싶은데 자꾸만 하늘이 흐린 달이고, 어떤 두께의 옷을 입어야 할지 헷갈리는 달이에요. 그리고 <4월 이야기>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는 달이기도 해요.
2000년 4월, 그러니까 21세기 벚꽃이 만개한 봄에 개봉했던 <4월 이야기(1998)>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이 전성기에 만든 로맨스 영화예요. 영화는 주인공 우즈키가 고향 훗카이도에서 기차에 올라타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시작하죠. 도쿄 근교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우즈키는 자취를 시작하면서 혼자 사는 법을 배워요. 뽀샤시한 화면에 담긴 봄날의 우즈키는 주로 쭈뼛대고, 망설이고, 긴장하고, 가끔 안도해요. 우즈키에겐 모든 것이 모험이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모험은 사랑하는 고향 오빠에게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 오빠와 같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기적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고, 이 모든 모험이 시작됐으니까요. 다른 나라에 가도 앱을 켜면 새로운 데이트 상대를 만날 수 있는 시대에 ‘고향 오빠. 서점 알바생. 인사...’라니. 심지어 <러브레터>의 첫사랑 카시와바라 타카시의 미모에 감동했던지라 <4월 이야기>의 첫사랑 배우의 미모는 대실망...이었어요. “마츠 다카코가 저 남자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하지만 우즈키의 떨림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4월 이야기> 속에는 여러 명장면(싸이월드에 떠돌아다니던 캡쳐들)이 있죠. 우즈키가 이삿날 후드티에 쌓인 벚꽃을 털어내는 장면, 빈 자췻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옆으로 픽 쓰러지는 장면, 초록 언덕에서 봄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장면, 빨간 우산을 들어 올리며 떨어지는 빗물과 함께 환하게 웃는 장면... “이게 끝이야?” 싶은 67분짜리 흔한 로맨스 영화가 봄날 하면 떠오르는 콘텐츠가 된 건, 우두두 떨어지던 벚꽃들과 혼자였던 마츠 다카코 때문이에요. 나도 언젠가 한 번쯤 양껏 떨어지는 벚꽃 속에 파묻혀 보고 싶기도 하고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봄에는 벚꽃이 아닌가 싶어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로빈
"꿈은 없고요, 장범준씨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