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 막바지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미 그전부터 나아지고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공식적인 게 가장 좋은 것이니까요. 더불어 여전히 힘겹지만, 이전 일상의 모습으로 어느정도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개인적으로도 다행인 것이 4월 중순 이후로 뭔가 답답한 감정, 우울한 느낌에 조금 시달렸었습니다. 물론 20대쯤에는 그런 감정이 일상다반사였었죠. 그런 감정을 기반 삼아 창작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나이를 먹고 나서는 꽤 잘 컨트롤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뭔가의 무력감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싹을 트더니 4월 말쯤에는 어느순간 훅하고 한번 기습을 하더군요. 각종 취소, 중단, 거절, 예측불가능성 등이 한꺼번에 오면서 생긴 일종의 코로나 블루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굳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 뾰족하게 말하게 되며 여러모로 좋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4월의 마지막 날, 레미와 점심을 함께하다가 그런 답답함을 잠깐 토로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레미에게 테오는 긴 시간 동안 너무 많이 콘텐츠를 봐오지 않았나, 이야기 보는 걸 잠시 멈춰 보는 건 어때요? 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뭔가 머릿속에서 ‘아’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부로서도, 일로서도, 휴식으로서도 책이든 영화이든 만화든 게임이든 인터넷 게시물이든 뭐든 간에 한 번도 놓지 않고 지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하지도, 보지도, 읽지도 않으며 지낼 수 있을까 잠시 골똘히 궁리하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신과 헤이든, 레미와 새로 입사하신 조이와 함께 1층 로비에서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사냥의 시간>, 소설 <이제 나를 알게 될거야>, <워터>, 그래픽 노블<here_여기서>, 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 등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듣고 나눠보면서 뭔가 감정의 알갱이들이 마음속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참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대체 이런 간사한 마음이란 건 사람 몸속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요?
그래도 이번의 긴 연휴 동안 저는 디지털 디톡스는 몰라도, 콘텐츠 디톡스는 조금 진행한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레고를 하루 종일 같이 만들고, 아내와 함께 긴 산책로를 걷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군가 했던 말 중에 비워내야 더 채울 수 있다는 말이 있더군요. 정말로 그럴 수 있을지 천천히 비워내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한 다음 목표는 바닷가나 물가에 가서 하염없이 바라보기, 비가 한바탕 오면 빗소리만 듣기입니다. 그런 뒤 얼른 예전처럼(?) 명경지수의 마음을 되찾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테오
"아주 오래전 유명했던 광고가 있었는데요. 배우 한석규 씨가 스님 한 분과 대나무 숲길을 걷다가 한석규 씨의 전화벨이 울리자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라는 카피가 뜨는 광고였습니다. 레미의 말을 듣자 이 광고카피가 떠올랐는데... 네... 전 옛날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