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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해, 너무 에픽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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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기자 친구가 있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부천에서 서울에 있는 한 신문사로 출퇴근한다. 기자가 되기 전까지도 좀 이상했는데, 1호선 첫차를 수백 번 타다 보니까 사람이 더 기괴하게 변해버렸다. 하여튼 그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반지의 제왕 챌린지를 세 번 이상 하지 않은 자와는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중국 속담이 있지…”
딱히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가 정의한 바에 의하면 반지의 제왕 챌린지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영화 트릴로지를 확장판으로 하루종일 보는 것을 뜻한다. 한 편당 네 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리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꼬박 보면 밤이 된다. 아무것도 않고 한나절을 영화만 보는 것은 그야말로 반지운반자에 버금가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중국 속담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5년 전에 반지의 제왕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주파한 경험이 있지만 그 말을 보고 나니 갑자기 가슴 속에 열정의 불꽃이 지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네이버 시리즈에서 반지의 제왕 확장판을 세 편 다 구매하였다. 원래는 일요일 하루동안 다 보려고 했는데, 처리해야 할 메일과 원고가 쌓여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5년 전의 나는 날백수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게으른 대학생이었으나 지금은 사회의 노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 편씩 보는 걸로 내 마음 속의 또다른 나와 합의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중간계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있다. 이 위대한 작품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나는 새로운 아름다움과 새로운 위대함을 느낀다.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요즘 난립하는 CGi 떡칠 영화들보다 훨씬 깔끔한 특수 효과나 마그눔 오푸스의 경지에 다다른 연출은 딱히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이번에 내 마음을 직격한 것은 반지의 제왕의 인물들이 겪는 스토리 아크였다.
반지의 제왕의 모든 선역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갈구하는 바가 있지만 다들 수많은 좌절에 직면하며, 결국 다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어쩌면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고결한 특성 덕분에 승리를 거둔다. 그 승리들이 모여 선은 마침내 거대한 승리를 달성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승리를 위해 인물들은 다시는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변화를 겪는다.
너무 많은 예시가 있지만 프로도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는 작고 허약한 호빗이지만, 가장 커다란 짐을 지고 운명의 산으로 나아간다. 그 여정 속에서 프로도는 반지에 대한 갈망이라든지 쉴롭이라든지 수많은 시련에 마주치지만, 가장 예상치 못한 것은 역시 예전에 반지의 주인이었던 골룸이다. 샘은 골룸을 죽여버릴 것을 청하지만 프로도는 골룸에게 연민을 느껴 그러지 않기로 한다. 골룸은 그 이후로 꾸준히 둘을 위기에 몰아넣고 심지어 거의 죽일 뻔 하기도 하지만, 최후에, 운명의 산에서, 마침내 반지의 유혹에 굴하고 만 프로도는 골룸에게 반지를 빼앗기고, 그 골룸은 반지와 함께 용암 속에서 녹아 사라진다. 프로도가 발휘했던 고결한 연민이 마침내 최후의 극적인 승리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프로도는 이전으로 돌아올 수 없다. 나즈굴에게 찔린 상처는 끝없이 그를 괴롭히는 흉터가 되어 영원히 낫지 않는다. 그리고 반지와 함께한 기억은 그에게 정신의 고름이 된다.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된 것을 아는 프로도는 자신이 태어난 중간계와 격리된 영원의 세상, 서쪽 세상으로 떠난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인간의 삶에 비가역적인 지점이 있음을 철저히 깨닫고, 과거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극도로 에픽하면서도 쓸쓸한 여운에 아직도 몸부림치고 있다. 조금 더 어릴 때 영화를 보았을 때도 미약하게 느꼈던 여운이지만, 나는 이제야 그 여운의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다. 그 이유를 알고 나니 나는 여기에 사로잡혀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를,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인간 삶의 아름답지만 쓸쓸한 모습을 나도 꼭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언젠가는 나도 그런 에픽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좀더 반지를 생각하는 데 골몰해야겠다.
아, 우리 너무나도 위대한 영화 클립을 하나 보는 건 어떨까? 다음 영상은 변연엽의 해마곁이랑 쪽에 위치한다고 알려진 ‘에픽 신경회로’를 1초에 25번씩 자극한다고 알려진 영상이다. 에픽 신경회로의 과열로 뇌세포가 불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심너울
“에픽 신경회로는 심너울의 자의적 이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