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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않으면 전부 없던 것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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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가혹했고, 내게는 조금 특별했던 한 해였는데 해를 정리하려고 보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몇 월에 어떤 글을 썼고, 어떤 소설을 구상했으며, 어떤 소설을 완성했는지가 모든 기준의 척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걸 기억하고 싶은 게 아닌데.
내기 기억하고 싶은 건 언제 누구와 무엇을 했고, 어떤 일에 행복했으며 어떤 물건을 샀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싶었는데. 물론 2020년은 누구를 만나지도,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을 갈 수도 없던 해였지만 그렇다고 한 해 내내 무미건조하게 살았던 건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새해 목표로 블로그 시작을 잡았다. 1월 1일에 게시글을 올리기는 했는데 잘 쓰고 있는 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선다.
그래도 2020년을 돌이켜 본다면, <어떤 물질의 사랑>과 <천 개의 파랑>, 그리고 끝자락에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앤솔러지도 출간이 됐다. 멀게만 느껴졌던 판권도 몇 개 팔았고, 사이버상으로나마 독자분들과 만나는 자리도 있었다. 그리고 안전가옥과 협업 중인 뱀파이어 소설도 한 해 끝에 마무리지어 교정에 들어갈 듯하고, 단편 소설도 4~5편 정도 쓴 듯하다. 그래, 이렇게 썼으니 쓴 기억 밖에 안 남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올해는 유독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졌다. 그 전에는 내가 나를 믿는 힘이 강했는데 요즘은 잘 믿지 못한다. 정말로 잘 해내고 있는지, 옳은 방향인지, 이게 최선인지를 계속 따져 물으며 본의 아니게 매일 나를 취조하고 있다. 피곤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 중 하나이기는 하다.
2021년에는 조금 더 쓰고 싶은 소설을 과감하게 써볼까 생각 중이고, 21년 끝에는 많은 추억들을 내가 기억했으면 한다. 재활병원에 거의 갇히다시피 있는 엄마와 다시 호캉스도 가고 싶고 몇 십년 만에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아빠와 국내여행도 가고 싶으며 일에 지쳐 있는 언니를 데리고 해외에 나가고 싶다. 그러니 빨리 상황이 나아지기를. 더 지치기 전에.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천선란
"지난 해는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기가 참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