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충분히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살아온 만큼 깨달은 것들이 있긴 하다. 그 중 제일 큰 깨달음은 삶은 평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니, 평탄이 웬말인가 오히려 삶은 동남아의 여름 날씨처럼 늘 비가 쏟아지거나 또 다른 어느 나라처럼 지진이 일어나기 일쑤다. 한 마디로,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지만 유독 내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이니 괜스레 죄책감을 품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이의 삶이 화산 폭발에 휩싸여도 당장 내 삶 앞에 내리는 장마가 더 걱정되는 게 인간이니까.
계속해서, 삶을 자연재해에 비유한다면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그야말로 예고도 없이 찾아온 폭풍이었고 그 비바람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 간신히 삶을 붙잡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나는 수시로 입원을 했는데 문제는 입원을 해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하필 그때는 <마귀>라는 신작의 마감 시즌이었다. 작품이 공개되어야 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었기에 완성하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출판사에서도 난감해했다. 아픈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순 없으니. 그래도 자비는 없었다. 어쨌든 다 써야 한다는 게 출판사의 요구였고, 물론 그게 당연한 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병실 침대 위에서 이 위대한 소설 <마귀>를 써내려갔다. 팔에는 링거를 꽂고, 일어나 앉을 수 없는 탓에 거의 눕다시피해 노트북을 가슴에 올려놓고 썼다. 낮에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간호사의 불호령이 떨어졌기에 항상 늦은밤과 새벽 사이에 썼다. 그런 밤이면, 그러니까 모두 각자의 병을 가진 채 아프게 자고 나 홀로 깨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날이면, 괜스레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 삶을 관통하는 거대한 폭풍이 뿜어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고 바다가 넘쳤다.
나는 너무나 막막했다. 그 폭풍속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헤엄을 치는 것 같았다. 두 팔을 아무리 휘저어도 해변과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며칠 지나서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고 병원 복도를 전전하며 몰래 써야 했다. 그 탓에 회복은 자꾸만 늦어졌다.
작품은 제목을 따라간다고 <마귀>라는 장편소설은 정말로 내 삶을 지옥으로 이끌려는 듯했다. 나는 지옥의 경계에 서서 아등바등 써내려갔다. 작가가 된 후로 이토록 어렵게 무언가를 쓰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이야기가 조금씩 채워지면서 슬슬 재미가 붙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재미를 느끼다니, 어쩔 수 없이 평생 작가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때 조금 했다.
어쨌든 갖은 고생 끝에 <마귀>는 병원에서 완성했다. 물론 그 후 아주 많은 수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링거를 맞으며 완성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으면 싶다.
<마귀>는 호러 소설이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이 내게는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런 공포감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이른 더위가 찾아온 이때 다들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책만 잘 팔린다면야 폭풍속에서의 수영 정도야 몇 번이나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당분간은 내 삶에도 맑은 날씨가 찾아왔으면 하는 것이다.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맑은 낮과 별을 볼 수 있는 맑은 밤이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전건우
"<마귀>에 사인을 할 때 꼭 넣는 문장이 있다. 바로 이것이다. “신은 인생에서 최고의 것들을 항상 두려움 뒤에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