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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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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인터넷 서점 칼럼에서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써 달라는 요청이 와서 간단하게 써서 보내면서 진 웹스터의 명저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생각을 했다. 처음 키다리 아저씨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도서관에 있던 B5 판형의 만화 버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출판사의 어떤 작가 작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저비스 펜들턴 씨를 금발의 어깨 넓은 미남으로, 지미 맥브라이드를 샐리와 같은 흑발의 미소년으로 그려두었던 것은 생각이 난다. 펜선의 두께와 명암 조절이 자유자재인 그림체였던 것으로 기억되어 아마 이희재 선생의 작품이 아니었나 (비슷한 시기에 만화로 보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본 것도 기억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될 즈음 부모님 친구 댁 자녀 책장에서 능인 만화로 보는 세계 고전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다시 한 번 키다리 아저씨를 만났다. (그렇습니다, 저는 남의 집에 놀러 가도 사람과 놀기보다 책장을 노리는 타입이었던 것입니다) 허순봉 구성, 박종관 그림. 곧 집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쫓기는 한편 이미 내가 줄거리를 아는 책이라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봤는데 주인공 주디-제루샤 애봇이 책을 읽는 습관에 대해 묘사한 컷들은 어째서인지 기억에 단단히 박혀있다. 주디는 두꺼운 책 서너 권을 펼쳐두고 바닥을 구르다시피 하면서 그 책들을 번갈아 읽고 있었다.
​줄글로 된 키다리 아저씨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왠지 이 때의 기억은 그리 진하게 남아있지 않고, 서문이었던가, 역자 후기에 있던 진 웹스터의 일화만 생각난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해서 마음 속으로 되뇌일 때가 종종 있다.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진 웹스터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철자법, 그러니까 영어 스펠링은 매우 서투른 편이었다. 그래서 학교 영어 선생님이 진 웹스터, 너는 뭘 믿고 이렇게 스펠링을 아무렇게나 쓰는 거니? 하고 핀잔을 줬는데, 진 웹스터는 "물론 저는 '웹스터'를 믿고 있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참고로 웹스터는 영어 사전 브랜드 명이라고 한다. 아마 사전 주 편찬인의 성을 따온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로알드 달도 어릴 때 작문 숙제를 해 가면 여기저기 자 대고 그은 줄과 "주제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터무니없는 망상", "철자법 엉망" 등의 코멘트 때문에 숙제가 온통 울긋불긋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로알드 달이나 진 웹스터나, 훗날 소위 거장이 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초중등 시절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성장하리라는 것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을까? 철자법 때문에 그들을 구박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사실 이 문단도 처음 하려던 이야기와는 영 동떨어진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일단은 이대로 두겠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의 주제는, 글쎄, 명확한 주제를 품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어서 확신이 잘 서지 않지만, 아마도... 몇 살때 어떤 버전으로 그 책을 읽었는지가 개인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것이었을 듯하다. 첫 문단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책 읽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최근 다시 한 번 키다리 아저씨를 읽었는데 그 어떤 때 읽었던 것보다도, 심지어는 처음으로 읽었을 때보다도 훨씬 감동이 컸다. 왜였을까? 일단은, 이 이야기가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교에 진학해 졸업할 때까지를 담은 것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감동의 진폭이 무엇보다 컸던 것 같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키다리 아저씨를 읽은 것은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 즉 대학 생활을 경험하기 전이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자기 물건을 가져본 적도 별로 없고 자존감도 터무니없이 낮던 여자아이가 대학 생활을 거치면서 능력 있는 사회인-그 중에서도 소설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한국 나이로 서른 두살이 되어서야 나는 드디어,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준비가 되었고, 우연찮게 준비된 채로 다시 읽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온전한 독서란 무엇일까, 어떤 일일까. 어떤 책을 소리내어 읽어 한 글자 한 글자 빠짐없이 보고도 완전한 이해에 다다르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이 쓴 글이 그 자신을 초과하는, 그리 드물지는 않은 경우들을 보면, 온전한 독해란 저자에게조차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문단도 원래 논하려던 주제와는 영 동떨어진 이야기인 데다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현학적인 생각인 것 같지만 일단은 이대로 두겠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나는 내가 키다리 아저씨의 완전한 독서에 성공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독자가 이야기를 장악하려는 욕망에 대해 쓴 고전이 있지 않은가? 스티븐 킹의 <미저리> 같은...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도와줘요! 살려줘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이건 쿨의 미저리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