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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와 텍스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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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1. 기계식 키보드.

기계식 키보드를 샀습니다. 뭔가 큰 결심을 한 건 아니고요.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쓰던 키보드에 비하면 오히려 저렴했어요. 지금까지 써왔던 게 대단한 물건이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고. 호환성과 디자인을 명목으로 가격을 올려 받는 A사의 물건을 쓰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휴직을 앞두고 있던 터라 좀 고민을 하기는 했는데 마침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하고 있길래 덜컥 사버렸습니다.
아무튼. 기계식 키보드를 사게 된 이유는 별 거 없어요. 그냥 글쓰는 물리적 재미를 더하고 싶었거든요. 지금까지 키보드에 불만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저는 심지어 그 악명 높은 1세대 나비식 키보드로 25만 자 짜리 과학책을 쓰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올해에는 이런저런 측면에서 좀 한계에 부딪히고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별로 없어졌다보니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에 버거울 때가 많았어요. 언제부터인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이 그냥 딱딱한 벽을 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요(결코 A사의 나비식 키보드를 까는 게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 유튜브에서 즐겨보는 테크채널에서 A사 OS에 최적화된 K사의 기계식 키보드에 대한 리뷰가 나오더군요. 괜찮아 보였어요. 어떤 리뷰어가 말하길, A사 호환을 전제로 만들어진 무선 기계식 키보드가 거의 없는 와중에 평균을 이상을 하는 반가운 제품이기는 하지만 굳이 무선과 A사 호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비슷하거나 좀더 나은 품질의 저렴한 제품들이 많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 두 개가 제게는 필수였다보니 오히려 그 이유로 굳이 다른 키보드를 찾아보지 않고 바로 K사의 제품을 골랐어요. 선택지가 많은 쇼핑은 괴로운 일이니까요. K사 제품 중에서도 이런 저런 선택지가 많이 있었는데 여기서 고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제가 적응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작은 키보드를 골랐어요.
키보드의 스위치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일단 제가 고른 건 적축이에요. 집에서 새벽에 쓸 때가 많다보니 소음은 최대한 줄여야 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써보니 적축도 어마어마하게 시끄럽더군요. 스위치 테스터라는 걸 구해서 여러 종류의 스위치를 테스트해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청축은 정말 옛날 타자기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음. 이걸 쓰면 내가 시끄러워서 견디지 못할 것 같아. 갈축에 호기심이 좀 가기는 하는데 일단 적축을 고르길 잘 한 것 같아. 대충 그런 결론이었습니다.
유튜브에서 키보드 리뷰를 몇 개 봤더니 위대한 알고리즘께서 온갖 종류의 키보드 동영상을 마구 올려주더군요. 그래서 몇 개 봤는데… 키보드 마니아들의 신비롭고 오묘한 세계를 겉만 슬쩍 핥아봤습니다. 아니, 나는 저렇게 못 해. 무슨 키보드 스위치를 분해해서 스프링에 윤활제를 발라. 아니, 철심 소리 좀 날 수도 있지 왜 거기에 또…. 뭐,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키보드 즐기기는 키캡을 레트로 맥 키캡으로 바꿔끼는 것 정도에서 일단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나중에 갈축을 한 번 써보고 싶기는 한데 스위치를 하나하나 뽑아서 바꿔 넣기는 솔직히 좀 귀찮네요.

도구2. 율리시스

스크리브너라는 글쓰기 앱을 쓴지 7년 정도 되었어요. 원래는 논문을 쓰기 위해 구입한 거였죠. 그러다가 지금은 소설을 쓰기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스크리브너에는 온갖 종류의 다양한 기능들이 있지만 전 사실 대부분 쓸 줄 몰라요. 그럼에도 스크리브너를 쓰는 건 먼저 편집 기능 때문이었어요.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다양한 초고를 만들 수 있고 세분화된 장의 순서를 마음대로 바꾸고 참고자료도 따로 모아둘 수 있고 두 개의 에디터로 같은 문서의 다른 부분을 편집할 수 있고 등등. 그리고 다른 이유는 스크리브너 화면 자체를 일종의 작업실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워드나 한글, 메모 같은 다른 편집기들은 업무나 일상용으로도 자주 쓰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작업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잘 구분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스크리브너는 정말 집필용도로만 쓰기 때문에 스크리브너가 화면을 채우면 그때는 작업실 책상에 마주 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쓰던 스크리브너에서 이제 율리시스로 이주해 볼까 고려하고 있어요. 스크리브너가 여전히 좋기는한데 다양한 기기에서 쓰려고 하면 동기화가 너무 번거로웠거든요. 한 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동기화를 제대로 시키지 않고 다른 곳에서 같은 문서를 열면 충돌이 일어나요. 대부분의 경우 충돌이 일어난 파일을 보존해 주기는 하는데 그런 복구파일이 쌓이는 것도 썩 보기 좋지는 않고 가끔은 문서의 일부가 사라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패드 버전에서는 에디터를 여러 개 쓸 수가 없어요. 꼼수를 쓰면 가능하기는 한데 꼼수가 최종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죠.
그래서 고른 게 율리시스라는 앱이었어요. 요즘 대세라는 베어도 고려는 했는데 베어는 중심이 있는 긴 글보다는 짧은 메모의 DB 구축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율리시스로 기울었어요. 율리시스는 예전부터 알고 있기는 했는데 가격이 좀 부담스러워서 항상 포기를 했다보니 이번에도 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글쓰기의 불편함을 덜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에 일단 1년 구독을 했습니다. 2주 체험기간이 있기는한데 아마 어지간한 불편함이 없으면 계속 쓰게 되겠죠.
그래서 11월에는 기계식 키보드와 율리시스라는 두 개의 새로운 도구가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도구가 일을 대신 해주지는 않겠지만 일을 조금 더 즐겁게, 또는 덜 불편하게는 해주겠지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해도연
"트위터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뾱뾱이에 비유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더라고요. 역시 그런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