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자주하는 무용담이 있다. 고등학생 때 사귀던 같은 학교의 한 살 많은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고 공교롭게도 학교 선후배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학교 급식실, 전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그 곳에서 나는 그의 뺨을 때렸다. 무려 8대나 쉬지도 않고 후려갈긴 후에 그대로 급식 줄을 서서 밥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그 날 메뉴가 참치야채비빔밥이었던것까지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 무용담을 재미없게 들은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다. 바람핀 전남자친구에게 물리적인 처벌을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물론 고등학생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었다. 앞으로 살면서 언제 또 그렇게 남자 뺨을 때려볼 일이 있을지.. 아직도 그때 그 손맛을 잊을 수가 없다.
사이다로 끝나는 듯한 이 일화의 뒷 얘기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는 사귀는 동안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스킨쉽을 강요했다. 거절이라는 나의 의사가 압도적인 체력 차이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그 덕분에 알게 됐다. 그러니까 급식실에서 뺨을 때리게 되기까지의 원동력은 단순히 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사귀는 사이였기 때문에 묵인해온 행동이었다. 그 날 이후 더 이상 참고만 있기에는 그가 너무 뻔뻔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이 일을 학교에 알리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으로 그가 나에게 했던 짓들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이 일을 공론화시키면 부모님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도 전혀 상관없다며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이 이야기는 아주 싱겁게 끝이난다. 전남자친구의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고 가뜩이나 삐딱선을 타고 있는 자기 새끼가 더 엇나가지 않게 그냥 용서해주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당시에도 굉장히 어이가 없었다. 절대 용서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새엄마가 상담을 왔다가 우는 모습을 보게 됐다. 모르겠다. 그때는 그냥 그 아줌마가 불쌍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싱겁게 그 일을 없었던 일로 묻어두게됐다.
얼마 전 영화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을 봤다. 밤쉘은 폭스 뉴스의 회장인 로저 에일스의 성추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북미에서는 작년 겨울에 개봉했으나 코로나 여파로 국내에선 7월로 개봉일이 늦춰졌다. 그리고 7월 초, 다크웹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의 분노가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의미가 아마도 이런 뜻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앵커 그레천 칼슨이 로저 에일스를 고소하고 난 후에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다른 피해자들의 모습이 여럿 나온다. 상대가 언론 권력의 제왕이라고 불리는만큼 모든 걸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생계를 포기하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사실 내가 겪었던 일과 같은 맥락의 사건은 아니다. 그 일은 권력형 성범죄보다는 데이트 강간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과거의 일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새엄마 핑계를 댔으나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내가 너무 과잉 대처를 하고 있다는 주변의 반응과 부모님이 알게 되어도 상관 없다고 말했던 것과 다르게 그 일로 가슴 아파할 부모님을 생각하니 쉽게 내 뜻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증언 외에는 따로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법적인 처벌을 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걸 잘 알고 있다. 하물며 연인이었던 사람을 상대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워야한다. 유죄를 입증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가해자가 어떤 수를 써서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돈 뜯어내려는 꽃뱀 취급을 아주 자연스럽게들 하는데 그것들을 감내하고 꽃뱀짓을 하기에는 다른 범죄에 비해 가성비가 너무 안좋은 것 아닌가.
가해자는 죽음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그의 직위는 여전히 시장인 채로 서울시에서 거대한 장까지 치뤄줬으니 어느정도 그가 원하는대로 됐다고 본다. 지난 4일 적폐청산 국민참여연대 대표가 박원순 사건 피해자 대리인인 변호사를 무고 혐의로 고발했다. 말이 없는 망자를 대신해 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제 3자와도 싸워야한다.
산 자와의 싸움보다도 더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사라진 가해자처럼 어디선가 자꾸 없었던 일로 무마하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미 끝난 가해자의 삶과 다르게 피해자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시체에다가는 뺨을 때릴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