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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트로마에서 디즈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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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마
가디언즈오브갤럭시
디즈니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감독 제임스 건을 해고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의 제작을 중단했다고 하죠. 제임스 건이 과거 SNS에 올린 소아성애 옹호 농담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이렇게 끝났습니다. “나는 남자아이들이 내 은밀한 곳을 만지는 게 좋다.”라는 말을 농담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하여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역배우 중 한 명인 바티스타는 제임스 건을 열렬히 변호했습니다. 이 배우는 제임스 건에 대한 공격이 ‘사이버 나치들에 의한 것’이며 디즈니가 이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은 ‘사이버 나치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 비판했죠.​

‘사이버 나치’라...흥미로운 표현입니다. 나치는 전범이죠. 그것도 인종차별적인 논리를 이념의 뿌리로 삼아 무고한 사람들을 약탈하고 학살했던. 나치는 비인도적인 집단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바티스타의 논리를 따른다면 소아성애 농담을 비판하는 일이, 사람들을 단체로 가스실에 집어넣고 독살시키는 나치 수준으로 나쁘다고 하니까, 이 배우는 무척 엄격한 윤리 기준을 갖춘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예 그 기준이 없을지도 모르고요.
그의 논리를 짐작해보면 이런 거죠.
1. 예술가를 탄압하면 나치다. 2. 제임스 건은 예술가다. 3. 제임스 건을 탄압하면 나치다.
농담으로라도 정교하다 할 수 없는 논리이지만 이 외에는 그의 발언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나치의 탄압! 이라고 하면 조금 폼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그 탄압의 대상이 예술가라면 더욱 그렇고요. 나치의 탄압 속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예술가! 비록 그 발언이 소아성애 옹호 농담이었다는 것을 무시해야만 나는 폼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뭐 어쨌든.
그런데 아무리 나치라고 해도 어디 소아성애를 권하기야 했겠어요? 심지어 나치조차도 소아성애를 범죄로 분류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죠. 그러니 제임스 건을 변호할 때 ‘나치의 탄압에 저항했다’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저항했는가, 그 맥락을 살펴야만 합니다. 여기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위해 싸웠다고 하면 제법 폼이 나기는 할 것 같아요. 바티스타 역시 이 구도가 전통적으로 갖는 간지에 취한 것이 아닌가 싶고요.

하지만 예술의 순수성이 그렇게나 중차대한 가치인가? 하면 전 모르겠습니다. 예술가라는 타이틀만 달고 있다면 어떠한 비판이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가요? 그렇기에 예술가가 저지른 잘못을 지적하면 나치나 다름없는 사람이 되나요?

아니겠죠. 무엇보다 이 논리로는 나치의 퇴폐미술에 대한 비판을 방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치에 부역한 나치미술에 대한 비판조차 포기하게 될 텐데요.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히틀러가 스스로를 예술가로 규정하고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학살과 전쟁이 예술이라고 변명을 할 경우 그 순수성으로부터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예술가에게 자유를 박탈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술가는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서 여러 역할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 역할 중 상당수는 우리 사회가 예술가에게 당위적 제약을 비교적 헐겁게 가하는 덕에 가능해짐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술가가 자신이 가진 사회적 기능을 ‘나는 예술가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날 욕하면 안 된다’는 특권으로 이해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예술가의 사회적 순기능은 정지하고 맙니다. 스스로를 비판 불가능한 무오류의 성역에 설정하는 버릇을 들이게 되면 기행을 저지르고 누군가 이를 비판하면 엄중하게 예술의 위대함을 역설하며 되레 꾸짖고는 스스로가 대단한 작가라는 식으로 착각하는 컨셉 종자만 만들어지거든요. 경험담입니다. 믿어주세요.

예술가에게 주어진 위치와 특권들은 그렇기에 방종해도 된다는 허가증이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직종에 비해 자유로이 또 무게감 있게 발언할 수 있는 만큼 더욱 더 그 언행과 선택에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족쇄에 가깝죠.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예술의 순수성이 아니라 예술가의 직업윤리여야 하지 싶어요. 비록 폼은 덜하지만요.

제임스 건은 트로마 스튜디오 출신입니다. 이 제작사는 소위 ‘발칙한 상상력’ 류의 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곳이죠. <사우스 파크>의 트레이 파커 또한 이곳에서 데뷔를 했다고 하면 그 분위기가 짐작이 갈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트로마 스튜디오는 규모로 보나 작품으로 보나 디즈니의 정반대에 위치한 제작사입니다. 그러니 직업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트로마 소속의 감독과 디즈니 소속 감독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의 무게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지요. 전세계의 어린아이 1억 명이 관람한다고 상정한 영화와 매니악한 관객 몇 백만 명이 관람한다고 상정한 영화가 어떻게 같겠어요.

20세기에 트로마 스튜디오 소속 감독의 신분으로 제임스 건이 같은 발언을 했다면 되레 환호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발칙한 반항아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21세기의 디즈니는 그렇게까지 퇴행할 조짐도, 당위도 없겠죠. ‘발칙한 반항아’같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수사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에 가둬놓아야 할 거예요.
그가 한 발언들이 10년 가까이 전의 물건이라는 점에서 누군가는 이쯤 되었으면 공소시효기한이 지난 일이 아니겠느냐 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공소시효기한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라는 것도 존재하잖아요? 제임스 건의 퇴출은 그 발언 때문만이 아니라 디즈니에게는 트로마 스튜디오의 감성을 반복할 의사가 없다는 선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슈퍼 히어로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서브컬쳐 문화는 이제 그 사전적 정의와 달리 주변부를 넘어섰습니다. 역대 할리우드 역사에서 이렇게나 갈퀴로 돈을 긁어모으고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관객을 모으던 장르가 존재하기나 했던가요? 서브컬쳐는 문화의 중심을 잡아먹고 그 안에서 살을 비대하게 찌우고 있습니다.
서브컬쳐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게 되었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문법도, 직업윤리도 달라집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비롯한 서브컬쳐들은 그 세를 확장하면 확장할수록 이 시험대에 계속해서 오르게 될 예정이고요. 누군가가 이 직업 윤리에 대한 요구를 '사이버 나치'라고 조롱한다고 해서 이 변화를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글. dcdc "별개의 이야기지만 <가오갤>는 즐겁게 보았어도 <가오갤 Vol.2>에는 크게 실망했었네요. 사건이 이렇게 터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오갤>의 완성도는 제임스 건 감독보다 각본가 니콜 펄먼 덕분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어요."
편집. May(김미루)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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