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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일기: 반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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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세서리 중에서는 반지가 제일 좋다. 사실은 딱 그만한, 그러니까 대충 성인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반짝거리는 물건은 다 좋아하긴 한다. (굳이 이걸 또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반짝이는 건 다 좋아하지만 크고 반짝이는 것이나 “너무” 작고 반짝이는 것보다는 매우 스페시픽한 크기의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뭐 브로치라든지 배지라든지 목걸이나 팔찌에 달 수 있는 참(charm)이라든지… 찾아보면 많다. 요만한 물건은 손바닥에 놓고 쥐었을 때 허전하지는 않은데 손 안이 꽉 차는 건 아니어서 어쩐지 애틋하고 간질간질한 감각이 든다. 이 감각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시각적 존재감이 매우 분명하고 촉각적으로도 존재감이 있지만 꽉 쥐어 충만하게 느낄 수는 없는… 하아 아무튼 그만한 크기의 반짝거리는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물건은 반지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심지어 반지는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건 시각화/촉각화된 공허 그 자체. 반지를 손바닥 위에 두고 주먹을 쥐면 동그랗게 돋아오른 자기 손바닥을 만질 수 있다. 그건 내 몸이기도 하고 반지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 공허를 채우는 건 인간의 손가락… 그러니까 반지가 완성되는 순간은 내 몸과 결합되었을 때, 라는 바로 그 느낌… (말줄임표를 그만 쓰고 싶은데 너무 벅차서 자꾸 나오네요…) 심지어 반지는 손가락둘레를 재서 자기에게 꼭 맞는 것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대개는 맞춤 제작을 해야 하는… 굉장히 개인화된 액세서리다… 아 너무 좋아서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처럼 반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옛부터 많았기 때문인지 반지는 꼭 보석이 박혀있지 않아도 많은 의미를 지닌다. 왜 그 F(x) 노래에도 나오잖아요 ‘보고 싶은 나 생각 들 땐 커플링 만져보기’. 그러고 보니까 옛날 이야기 중에서 반지를 문지르면 나오는 정령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고… 즉 알라딘 류 이야기인데 알라딘보다 훨씬 스마트한 거지. 일단 반지는 램프 손잡이의 미니어처나 마찬가지고 그건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법… 인간 입장에서는 램프 따위보다 반지가 훨씬 이득이다. (쓰고 보니까 꼭 정령이 깃들어 있지 않아도 원래 램프보다 반지 쪽의 가치가 더 높지 않나 싶군요…) 물론 정령노예의 삶의 질 측면에서는 반지보다 램프가 훨씬 낫겠지만.
반지 이야기라면 반지의 제왕도 잊어선 안 되겠지. 당연히 토털리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 하나뿐인 -같은 라인의 다른 디자인 반지가 몇 세트 더 있긴 하지만- 리미티드 디자인에 고대어 레터링 각인까지 들어간 반지라니 그런 거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고. 실물로 보고 심지어 시착까지 해 본 다음이라면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건 모든 반지들의 왕이라며?
아까운 점은 내 손가락이 X나 못생겼다는 거다. 상스러운 어휘를 동원하지 않으면 못다 표현할 만큼이나 못생겼다. 그냥 못생겼거나 엄청 못생겼거나 대단히 못생긴 게 아니라 X나 못생겼다. 손가락 등쪽에 난 털이나 손등 마디가 분명치 않아서 주먹을 쥐면 도라에몽 주먹이 되는 점 같은 건 뭐 그래 아무래도 좋다고 치자. 손가락이 짧은 것도, 그래 뭐 심미적으로는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피아노 칠 때 가운데 도에서 높은 레까지 한 뼘에 닿긴 하니 괜찮다고 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문제는 손가락의 굵기다. 손가락 가장 안쪽 그러니까 반지가 주로 머물러야 할 곳의 둘레가 표준 여자 반지 사이즈를 한참 초과하는데, 한 술 더 떠 거기가 내 손가락에서 가장 굵은 부분도 아니라는 점. 이 사실이 종종 나를 극대노 상태로 몰아간다. 가끔 보면 내 손가락들은 손톱 달린 명란젓같다. 기능 면에서는 아직 큰 문제가 없으니까 괜찮아… 라고 하고 싶지만 손가락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반지를 끼는 것이라고도 믿고 있는 내게는 상당한 불만사항이 아닐 수 없다.
반지를 이렇게나 좋아하면서도 반지가 이렇게도 어울리지 않는 몸이어서 반지는 주로 구경만 하고 사지 않는 편이었는데 어느날 예고도 없이 너무 갖고 싶은 반지가 마치 사고처럼 나를 덮쳐왔다. 윈도우 쇼핑을 하러 가끔 들어가던 온라인 빈티지 주얼리 숍에서 클라다 링(Claddagh ring)을 발견한 것이다. 어 뭐야 이거 되게 마법소녀 물건같이 생겼다 했는데 (따로 언젠가 설명할 날이 있기를 바라지만 일단 여기서 롱스토리 숏, 나는 마법소녀 관련 아이템 라이트 콜렉터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전통 반지라지 뭐냐. 아니 이렇게 깜찍하게 생겼는데 ‘전통’같은 기품있는 단어가 붙어버리면 어떡하냐. 가운데에 하트가 있고 하트 위에 왕관이 있고 하트 옆에는 한쌍의 손이 붙어있는 반지… 하트는 심장(말 그대로)과 사랑을, 왕관은 충실함을, 양옆에 새겨진 손은 우정을 의미하는 모티브라는… 그 반지… 그러니까 옆에 장식된 한쌍의 손을 살짝 잘못 봐서 날개 장식으로 착각하거나 하면 웨딩피치 반지인 줄 알 수도 있는 그런 디자인의 ‘전통’반지… 아니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의미있는 물건이 있을 수가… 그런 물건이 어떻게 이렇게 비싸고 나한테 안 맞을 수가… 그 물건이 존재한다는 걸 안 이상 손에 넣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내 손가락이 그 빈티지 주얼리의 사이즈에 적합하지 않아 리터럴리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사용한 수도 없는 물건 치고 비싸긴 했지만 못 낼 돈은 아닌데 눈 딱 감고 지를까 어떡할까 이 돈을 내고 이 물건을 가지는 게 맞는 일일까… 그런 고민에 휩싸여…
한 일년 보냈다. (두둥)
내 소비벽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내가 물건을 뭐 허구헌 날 충동구매하는 줄 아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나는 충동조절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성인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경제적인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물건을 사거나 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이 습관을 고치는 데에 이십대를 다 쓴 것 같다) 다만 갖고 싶은 물건을 발견한 이후로는 그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도 못한다. 빨리 나만의 클라다링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습관처럼 클라다 링 디자인을 검색하다가 모 중저가 주얼리 브랜드에서 천사소녀 네티 모티브 키링을 구매한 것이었다. 이것도 뭐 만족스러운 소비였지만 클라다 링을 갖지 못해서 대신 산 것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신호이기도 했다. 해결되지 않은 소비욕은 엉뚱한 손해를 불러오는 법이다. 그동안 샀던 닥터마틴 짝퉁 워커 값을 다 합치면 닥터마틴 본품 한 켤레를 사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피눈물을 흘렸던 경험처럼… 쓰고 보니 좀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해서 드디어 클라다 링을 사려고 마음을 먹고 보니까 마음에 쏙 드는 클라다 링 디자인을 찾는 게 또 쉽지가 않았다. 마법소녀 물건도 좋아하고 반지도 좋아하는 소비자인 내가 주얼리 브랜드와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컬래버레이션 아이템을 사지 않는 이유는 “완구는 완구, 주얼리는 주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단순히 가운데에 빨간 하트 이따만한 거 달린 반지가 갖고 싶은 거였으면 그냥 웨딩피치 반지 시켰겠지, 타오바오나 뭐 그런 데에서… 나는 고유의 하트, 크라운, 핸즈 모티브가 분명하면서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로 새겨진, 다른 반지와 레이어드해서 착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가느다란 두께의 클라다 링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클라다 링이라는 물건의 의의가 아무래도 상징성에 많이 기울어 있다 보니 수요 자체가 하트 뙇! 왕관 뙇! 손 뙇! 이런 디자인에 몰려 있는 듯했다.
삼천 자 넘길 즈음부터 급격하게 집중력이 떨어진 김에 여기까지만 쓸까 합니다. 뭐 결론이 뻔한 얘기기도 하고… 결국 찾아서 결국 샀겠지 뭐… 네! 샀습니다.
사실 이 원고를 샘플로 해서 소비일기라는 에세이를 여러 편 써 보려고 했는데 (중간중간 티가 났겠지만 저는 이상한 -포털 사이트 쇼핑 AI가 제가 속한 성별과 연령에 추천하는, 즉 ‘30대 여성이 좋아하는/즐겨찾는’ 이라고는 절대 소개해주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을 정말 많이 삽니다) 소설이 아니다보니까 물건을 ‘샀다’ 부분은 별로 극적이지도 않고 재미가 없네요. 이 문제를 어떻게 상쇄할 것인지를 조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하… 이거 왜 재미 없지… 기획은 꽤 그럴싸한 느낌이었는데…
그건 그렇고 제가 직구로 산 클라다 링은 지금 (2020년 8월 4일 오전 5시 17분) 인천에 있다고 합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저에게는 프로포즈 받을 때 무조건 수락 가능한 마법소녀 아이템이 3종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토요일은 제 생일이네요 (병렬해놨을 때 마치 관계가 있는 듯이 보이는 두 문장이지만 의도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