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목 왼쪽에 인생 최대의 담이 걸렸다. 목을 조금만 움직여도 비명이 튀어나와서, 옆 방향을 보려고 하면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온몸을 전환하거나 아주 째려봐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파스를 붙이니까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형외과로 향했다.
역시 거북목이 신경을 짓누르고 있는 탓이었다. 의사님은 "지금은 젊어서 근육이 대충 받쳐주지만 나이가 들면..."으로 시작하는 파멸의 예언을 늘어놓았다. 몇 분 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도수치료실로 들어갔다. 그 곳은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방음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는데, 나는 곧 그 방음 시설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병원에서 튀어나왔다.
목의 담은 한 70%쯤 괜찮아졌다. 한 시간 동안 그토록 커다란 고통의 시간을 거쳤는데, 왜 완전히 괜찮아지지 않는 거지? 목이 새로운 인간의 아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불어, 나는 덤으로 내 골반이 뒤틀어져 있다거나 하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아니 다리 꼬면 편하길래 몸이 시키는 대로 꼬았고, 수그리고 휴대폰 보면 편하길래 몸이 시키는대로 목을 내밀었는데 왜 이렇게 몸이 망가진 건가. 나는 인간 신체가 너무 싫다. 내 몸도 드라이버와 렌치 하나씩 있으면 잘 분해한 다음 닦고 기름 치고 다시 잘 조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결국 호모 에렉투스가 네 발로 얌전하게 기지 않고 두 발로 일어나서 생긴 원죄다. 인간은 이족보행을 진화에서 얻은 대가로 수많은 정형외과적 질환을 겪어야 한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네 발로 쉽게 달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가장 처음 일어선 인간의 옛 조상은 그가 수천만 년 뒤에 태어날 한 글 못 쓰는 후손이 그의 결정 때문에 목을 못 돌리는 상태에 놓일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트교의 원죄 교리가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 인간의 신체가 덧붙인 그림처럼 생겼다면 삶은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신발업계 사람들도 더 먹고살기 좋았을 테고.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심너울
“진화에 목적성이 있다는 것은 흔한 오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