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꽤 많은 일을 겪었다. 2년이 지나 공익 생활이 끝났고, 새로 낸 책이 예상 외로 잘 팔리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갑자기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들뜨기도 했고, 에세이 계약을 하기도 했는데,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고 대학원에 떨어지는 등의 좌절도 있었다. 소재는 넘쳐나고 나는 그냥 그 중 아무거나 골라서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왕이면 안전가옥이랑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나는 내 이사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대전 중구 문화동에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이사를 왔다. 내 집은 2층짜리 단독 주택의 1층을 여러 원룸들로 막 리모델링을 끝낸 상태이다. 8평짜리 원룸의 남측 벽은 전면이 창으로 되어 있고 그 창은 작은 테라스(아니면 베란다? 발코니?)를 보여주는데, 이 테라스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난 집의 마당에 접했다. 마당 밖으로는 연희동 언덕의 여러 주택들과 연세대학교의 뒤쪽이 보인다. 아침이 되면 찬연한 햇살이 쏟아진다. 주위는 극도로 고요하다. 나는 벌써 이 방과 죽고 못 사는 사랑에 빠졌다. 평생 살 수도 있을 듯 하다.
대전에서 공익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4.5평짜리 원룸텔에 들어가서 살았다. 링피트를 하려면 요가매트를 깔고 가구 배치를 전반적으로 조정해야 공간이 생기는 1층짜리 방이었는데 반지층처럼 습했던 그 방의 주요 거주자는 내가 아니라 곰팡이였다. 싹싹 씻어도 씻어도 계속 되살아나는 곰팡이들, 나는 그 곳에서 사는 동안 지독한 피로감과 수면 장애에 시달렸는데, 하루에 열 시간을 자도 피로가 회복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나는 내가 막 살아서 생긴 문제인줄 알았다. 그런데 습기가 안정적이고 햇살이 많이 들어오는 방에 들어와서 일주일 살자마자 피로감이 싹 사라졌다. 거기다 옆 집에서는 공사를 해대서 소음도 심각했다. 임대인은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공익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서울시의 부동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돈이 많지 않다면야 부동산을 알아보는 것은 정말로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일이다. 의식주 중 하나가 되는 인간 생활의 핵심 요소가 그토록 비싸다는 것이 일단 괴롭다. 그리고, “우선 투룸은 제외야. 돈이 없으니 뷰도 포기해야겠지. 교통? 어쩔 수 있나. 최대한 반지층만은 아닌 곳으로 골라 보자고.” 이런 식으로 셈을 하다 보면 삶에서 여분의 사치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전부 지워나갈 수 밖에 없지 않나. 그 행위는 가난 때문에 내 삶의 귀함을 스스로 하나씩 깎아가는 기분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일부 악랄한 공인중개사와 이야기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었다. 나는 수많은 허위매물에 낚였는데, 허위매물에 낚여 뻐끔대며 부동산으로 가면 “아 그건 어제 나갔고… 혹시 이건 어떠세요?” 하면서 내가 본 매물보다 세 배는 더 비싼 집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면에 웃음을 띄었는데 난 그 웃음이 허위가 아닌지, 웃고 있는 그가 마음 속으로 “하하 이 흑우 잘 걸렸다" 하고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생각을 했다. 괴로웠다.
프리랜서라서 대출이나 지원사업과는 연이 없다는 것도. 나는 마포랑 관악 쪽을 알아보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원룸촌에 운석이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중에 나는 안전가옥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옛 건물이었다. 일을 끝내고 1층에서 스태프들과 잡담을 나눴다. 그러던 중에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PD가 천천히 걸어나오더니 그 특유의 극도로 명료한 발성과 느릿한 어조로, 표정에 영웅적인 결단과 확신을 품은 채, 신과 같은 전언을 내렸다.
“그렇다면 작가님, 답은 연희동입니다.”
연희동이 교통이 나쁜 탓에 저평가되어있는 집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한 곳 추천해 주었다. 나는 다음 주에 곧바로 연희동으로 향했고, 이 집이 리모델링되는 것을 보았으며, 테라스를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이 내가 살 보금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 친구들은 내가 집을 잘 골랐다고 야단이다.
레미 PD의 놀라운 통찰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연희동은 교통 문제 빼고는 대단히 살기 좋은 곳이었다. 사실 나는 교통 문제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나는 마산 출신이기 때문에 “교통이 나쁘다"고 말할 때 나약한 서울 사람들과는 그 뜻하는 바가 다르다. 마산에서 교통이 나쁜 곳에 살면 당신은 자차와 운전면허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식료품을 사러 머나먼 여정을 떠날 때, 37년마다 하나씩 오는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대형마트에 도달하지 못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대전에서 교통이 나쁜 곳에 살면 15분마다 하나씩 오는 버스를 두세번 씩 환승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교통이 나쁘다는 것은 5분마다 한 번씩 오는 마을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한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출퇴근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이니까 교통 문제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것은 프리랜서의 수백 가지 단점 위에 고고히 빛나는 단 하나의 장점이겠지. 거기다 내 친구들이 많은 마포에 가깝기도 하고. 애초에 나는 공익 생활을 할때 매주 주말마다 친구들 보려고 ktx 타고 서울과 대전을 오갔는걸.
집을 잘 골라서 기분이 상쾌하다. 뭐라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모르는 일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의 심너울이 여기서 쓰는 글이 언젠가 휴고 상 받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런 확률 없다고 할 수 있나?! 0은 아닐 거라구!
레미 PD께 정말 감사하다. 나는 살면서 그토록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Siri나 빅스비와의 대화에서 아무런 불편도 겪지 않을 것이다. 발음의 명료함에 대해서는 글로 표현이 힘들고, 실제로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안전가옥에서 들었지롱.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심너울
“감사합니다, 레미 PD님. 다음에 제가 커피라도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