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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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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초등학교 6학년 때,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옆반 여자아이였는데요, 어느 날, 저는 그 아이에게 5교시 쉬는 시간에 잠시 만나 달라고 부탁하고,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꿀잼 냄새를 맡은 같은 반 남자애들이 모두 달려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기어코 제 가방에서 ‘연애 편지’를 찾아냈습니다.
“야, 이 새끼 고백한다!”
“나도 좀 읽어보자!”
당연히 저는 조까라 했죠. 하지만 애들은 집요했습니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H라는 친구는… 화장실까지 쫓아왔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손에 꼭 붙잡고 오줌 쌀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H는 그 순간에도 편지 보여달라며 저를 흔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들고 있던 편지를 놓쳤고… 그건 그대로 소변기의 나프탈렌 위로 떨어졌고… 급하게 힘 줘서 참았지만, 저의 소변 몇 방울이 편지지 위로 착지했고… 저는 싸면서 비명을 질렀고… 그 순간 5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제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편지를 소생하거나. 새로 쓰거나.
하지만 40분 만에 새로 쓰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일단 편지지가 없었구요, 당시 담임 선생님이 엄한 분이라 수업 시간에 딴 짓 하면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실 라디에이터(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교실에는 난로가 있었죠!) 위에 편지를 올려두었습니다. 다행히 편지지만 푹 젖었지, 편지는… 살짝 젖은 상태였어요.
그리고 고백은 성공했습니다.
그 아이는 제 편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편지지는 왜 없냐?”라고 문제 삼지도 않았고, 혼수 물품으로 넣은 ‘빵 열쇠고리(당시에 유행하던 인싸템)’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생 첫 연애를 시작했습니다(실상은 연애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문자 친구’ 놀이였지만). 하지만 완만한 연애는 아니었습니다. H가 자꾸만… 협박했거든요.
“너 편지에 암모니아 함유돼 있는 거 걔한테 말한다?!”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며… 떡볶이 사주고, 유희왕 카드 사주고, 온갖 삥을 다 뜯겼던 게 떠오르네요. 나중에 알게 된 건, H도 그 여자아이를 좋아했다는 겁니다. 아무튼 저와 그 여자아이는 일 년 정도 사귀다가, 서로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년이 딱 이별 10주년이네요. 혹시 우연한 계기로 이 글을 본다면… 그때 그 편지 새로 써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혹시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었다면… 갖고 와 줘… 그대로 새 편지지에 써줄게… 이제는 글씨 더 잘 써… 나 작가 됐다, 세상 참 신기하지.
[Side B]
고등학교 때, 이상형을 만났습니다.
저는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녔는데요, 문창과는 1년에 한 번 있는 문학제 말고는 공연을 할 일이 없지만… 타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연기과는 연극. 무용과는 무용. 음악과는 연주(너무 당연한 말인가?). 덕분에 한 달에 한번 씩은 합법적으로 5,6교시 빼먹고 타과 친구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죠.
제 동창들이 무례한 추궁을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무슨 과의 공연이었는 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그래봐야 셋 중 하나지만…).
아무튼 그 아이는... 가발을 쓴 채로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연을 보는 내내… 뭐랄까. 아이돌 팬 분들이 최애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들 표현하시잖아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들지도 않았고, 연예인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저는 그 과의 친구를 통해 그 아이가 W라는 걸 알았습니다. 정말로 “공연이 너무 좋았다”는 마음만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친구는 자꾸 고백 해보라며 실실 웃었습니다. 근데 사실 고백은 일방적인 게 아니라 상호합의적인 행위잖아요. 마치 인터스텔라의 도킹처럼, 둘 다 준비된 상태에서 다만 누군가 먼저 진입해야 하는 그런 거잖아요.
저는 억지로 도킹 시도했던 ‘만 박사’의 최후를… 무려 심야영화 4D 스크린으로 관람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저 W와의 자연스러운 계기가 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님이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이뤄준다’는 명언을 남긴 것도 그쯤이었던 것 같군요.
“야, 너네 담임 선생님 결혼식에 W 간대.”
그리고 기회가 왔습니다. 친구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제 담임 선생님이 결혼을 하시는데, 거기에 W가 온다는 겁니다.
대망의 결혼식 당일.
비록 축가(반 아이들이 다 함께 했습니다!) 준비를 하느라 그 애의 얼굴은 못 봤지만, 모든 행사가 끝난 뒤, 저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결혼식장에 있는 걸 봤다고. 전부터 연락하고 싶었는데 이번 계기로 연락해 본다고. ‘전송’ 버튼 누르자 마자
저는 휴대폰을 덮어버렸습니다. 후우… 괜한 짓을 벌인 건가 하고 한숨을 쉬는데… 정말로 한숨 세 번 쉬기도 전에 답장이 왔습니다.
[나 선생님 결혼식 못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아이는 그 과의 대표 하객(?)으로 뽑혔지만, 전 날 몸이 안 좋아서 다른 아이로 교체됐고… 저는 그것도 모르고 장문 메시지를 보냈고… 짧은 답장이 왔고… 저는 인생 최고의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고… 곧장 친구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답장해야 할 지를 자문했고... 친구는 자기도 당황했는지... 저더러 “확인 해보지 그랬어”라면서 책임을 회피했고...
‘음… 죽일까?’
이 다음의 이야기는 프라이버시이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유일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 친구는 다행히 죽지 않고 건강히 잘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일시정지!]
안전가옥의 이번 공모전 주제가 ‘New-love’인 기념으로 저의 ‘Old-love’ 추억을 풀어봤습니다. 물론 다 지어낸 추억입니다.
이 책 보면서… 연습해본 건데, 제법 리얼했나요?! ‘시대의 디테일(해당 년도에 일어났던 사건을 드러내라!)’, ‘방해자’ 등의 ‘서브 플롯’을 열심히 활용해 봤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류연웅
"Side A와 Side B로 나눈 건… 며칠 전 읽었던 서련 작가님의 책 [더 셜리 클럽]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