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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조예은
1년 하고도 2개월 전에, 다니던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장을 든 채 학사모를 던졌지만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더 이상 학점과 과제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후련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날 찍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웃고있고, 떠나야 하는 학교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건 전혀, 정말 쌀 한톨 만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로 제가 아쉽거나 슬프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졸업 후로도 1년을 넘게 학교에 드나들었습니다. 자취집 계약기간이 남아있었거든요. 이전에는 모바일 학생증이면 충분하던 학교 도서관에 출입하기 위해 회원카드를 만들었어요. 그 카드로 가성비 넘치는 도서관 카페에서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그 곳에 있다보면 아직 졸업하지 않은 동기들을 만나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졸업했지만 동네를 떠나지 않은 친구들을 마주쳤고, 그들과 팀 과제를 하는 것처럼 노트북을 펼쳐놓고 시시콜콜한 잡담과 근황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꼭 아직 학생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커피 한잔에 천 구백원인 그 카페에 있는 한, 앞으로도 쭉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마, 지난 1월이었을 겁니다. 아직 코로나가 터지기 전, 자취방 계약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집이 살던 곳에서 좀 먼 곳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마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풍경이었어요. 함께 이사를 가는 친구가 먼저 카페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여기 와이파이가 안돼. 우리 이제… 내쳐졌나봐.”
친구가 눈을 부릅뜨며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에이, 네가 잘못 연결한 거겠지. 그렇게 말하며 와이파이 목록을 뒤졌습니다. 매일 연결하던 네트워크는 보이지 않았고, 처음보는 이름의 다른 네트워크들은 이용권을 사서 이용하라는 창을 띄웠습니다. 외부인 용으로 핸드폰 번호만 등록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던 네트워크가 사라진 겁니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망연자실한 채로 노트북을 접었습니다. 우습게도 그제야, 졸업하고 14개월, 동네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우리가 더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곳을 졸업했다는 사실이 와닿았습니다.
***
낯선 서울살이에 처음으로 정붙이고 산 동네였어요. 막 입학했을 땐 맥도날드 하나 없었는데, 어느새 번화가에만 있다는 버거킹, 올리브영, 서브웨이가 생기고 sns에 힙플레이스로 오르내리는 장소가 되어있었습니다. 여유롭게 산책하던 캠퍼스와 경춘선 기찻길, 단골 카페들, 언젠가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져 먹지 못하게된 막창집과 졸졸졸 흐르는 하천, 곳곳에 추억이 스며든 동네를 떠나, 이제 며칠 뒤면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으로 갑니다. 많이 아쉽고 괜히 슬프지만,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려구요. 이제야 정말로 캠퍼스를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조예은
"하지만 한달에 한번은 냉동삼겹과 된장찌개를 먹으러 돌아올겁니다…… 맛집은 못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