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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부엌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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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에 장편 소설의 초고를 신피디님께 넘기고 (빠밤-!) 여행을 갔다. 제주도로. 목표는 동백꽃이었는데 나무 위에 달랑달랑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더 좋은 걸 보고 왔으니깐.
‘해녀의 부엌’에 대해 알게 된 건 건너건너 알고 지내는 누군가를 통해서였다. 나보다 먼저 제주도를 갔다온 그는 해녀의 부엌이 너무나 좋다고, 그러니 꼭 가라고 열변을 토했다. 평소 남에게 무언가를 쉬이 권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궁금중이 일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 여행 둘째날 꾸물럭 꾸물럭 나갔다. 구좌읍 해변가에 위치한 그곳으로.
‘해녀의 부엌’의 구성은 단순하다. 해녀의 인생을 모티브로 만든 짧은 공연을 본다. 해녀 선생님들이 직접 잡고 기른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이 단순한 구성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버티어 온 여자들. 그들이 빗어낸 모든 것이 그 장소에 있었으니깐.
그 장소에서 나는 깊은 바다에서 숨을 참아내어야 했던 해녀의 삶을 버티게 해 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숨비소리의 파편을 느낄 수는 있다. 해녀의 부엌에서 군소의 맛이 ‘베지근’ 하다며 웃는 얼굴과, 뿔소라를 내리치는 망치를 쥔 손과,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와 가만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해녀의 부엌’에서 입과 귀로 먹고 마신 음식과 이야기들은 한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줄 것이다. 버텨온 사람들의 파편이 내 혈관 안을 흐르는 상상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꽤 기분이 좋다.
가끔 글이란, 있어 마땅한 일과 일어나지 않아 마땅한 일들의 간극을 메워 준다.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현실의 이야기를,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야기와 눈에 들어오나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한 이야기와 현실 밖의 이야기이나 실상은 현실의 이야기일 수 있는 수많은 활자들 사이를 유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영하며 버티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바다 속을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도, 꽤 좋다. 나 혼자 버티고 있는게 아니라는, 활자와 책과 이야기가 있는 한 세상 어디에든 함께 유영하고 있는 동료가 있다는 그런 감각에 빠져들 수 있으니깐.
누군가의 이야기로 누군가는 버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알약처럼 까서 머릿속에 넣고 시간을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종종 친구들과 말했다. 읽고 쓰지 않았으면 우리는 무사히 어른이 되지 못했을 거야, 라고. 그래서 나는 작가들이 마음껏, 아무 걱정 없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 아주 단순한 바람인데 이 바람은 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제주도의 뿔소라는 그렇게 맛있는데 왜 판로 확대가 어려운 걸까.. 가끔 혈관에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답답해진다.
제주도를 다녀와서 장편의 퇴고를 시작했다. 제목도 정해졌다. 잠시라도 누군가의 알약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니 퇴고, 힘내겠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범유진
“군소가 정말 맛있습니다. 별명이 바다토끼랍니다. 귀엽지 아니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