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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테오
제목의 문장은 아인슈타인의 남긴 유명한 말에서 따왔습니다. 말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27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에 참석합니다.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슈뢰딩거, 퀴리 부인,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막스 플랑크 등 노벨상을 휩쓸었던, 앞으로도 휩쓸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이과 드림팀이 모였던 전설적인 회의였지요. 사실 그 회의는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의 탄생, 후에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불리게 될 양자역학의 주류가 세상에 선보이게 될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다루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정확한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다, 우연과 확률이라는 요소는 문제점이 있다’ 라는 주장으로 몇 날 며칠 동안 보어와 토론과 설전을 벌였지만 결국 보어의 이론이 판정승을 거두게 됩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이 쓸쓸히 회의장을 떠나고 나중에 보어에게 편지를 씁니다. 편지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것은 아직 우리가 모를 뿐, 어떤 규칙이 반드시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우연은 없다 또는 우연에도 법칙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정확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다 공정하게 말한다면, 부정확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귀담아듣지 않아 주셔도 괜찮습니다. 우연이 작동하는 운명과 숙명에 대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운명과 숙명, 같은 뜻을 지닌 단어처럼 보이지만 굳이 단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조금씩 뜻도 다릅니다. 제가 좀 전에 말씀드렸었죠. 정확한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아무튼, 운명의 갈림길이라는 말을 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숙명의 갈림길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운명의 영단어 Destiny는 ‘확고하게 하다’라는 라틴어 destinare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운명에는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는 초월적인 힘이 있어 인간을 조정하지만, 극복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무엇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숙명, Fate는 다릅니다. 숙명은 인간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사가 독립적으로 전개됩니다. 운명은 인간이 어느 정도 계획한 결과이기에 ‘네 운명을 따라라. 그리고 네 운명을 개척해라.’ 라는 말은 성립 가능하지만 숙명을 따라라 혹은 숙명을 개척하라는 말은 불가능하지요. 숙명은 우연이 통하지 않는 절대적인 세계, 필연적인 원인과 결과 모두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세계이니까요. 쉽게 말해 숙명은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그러니까 그때 그곳에 갔었더라면’ 따위의 생각은 먹히지 않지요.
이런 거창하지만 부정확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요즘 특히 이야기를 개발하는 과정이 이와 비슷함을 느껴서 입니다.
보통의 경우 이야기는 일종의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본적인 서사규칙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내려왔습니다. 주인공이 어딘가 먼 세상으로 갑자기 떠나거나, 시련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원하는 어떤 것을 쟁취하거나, 무엇을 완수하거나 그것을 위해 수행하는 모든 과정이 결국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는 과정을 다루는 것이 그 규칙입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요. 어찌됐든 이야기 내에서 우연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아주 엄밀한 개연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 안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작가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지요. 거기서는 주인공이 이런 선택을 해야 합니다. 꼭 그곳에 가서 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악당은 이런 성격을 지니고, 이런 과거가 있어야만 합니다 등등 말입니다. 더불어 그 과정속에서 재미와 의미까지 담아내고자 하니 참 어려운 일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보니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지만 결국 이야기 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주사위를 던지지 않고, 만들어내는 그 무엇일까요.
그러나 그 이야기가 책으로 혹은 다른 이야기로 바뀌어 세상에, 사람들에게 선보이게 됐을 때의 결과는 전혀 다른 운명과 숙명의 이야기인 듯 합니다.
그나저나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1막 3장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만일 너희들이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종자가 싹을 틔우고 어떤 종자가 싹을 틔우지 못하는지 나에게 말해다오. 나는 호의를 구걸하지도, 악담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결국 저 대사처럼 우리가 만든, 만들고 있는 이야기가 어떤 재미와 의미를 선보이게 될 지 미리 알게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이리저리 떠들어본 이번 달 월간안전가옥이었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테오
"아인슈타인의 편지에 보어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신이 주사위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