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rch
🔪

봄은 잔인해질 수 있다, 나카시마 테츠야의 봄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벚꽃도 모자라 이제 샴푸향으로까지 연금을 받게 됐다는 그 분의 노래들처럼. 산에 들에 피는 꽃만 보면, 코 끝을 스치는 봄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바로 그 장면, 그 이야기. 2021년 3월 월간 안전가옥의 주제는 '봄에 생각나는 그 콘텐츠' 입니다.
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러 가지다. 따뜻하고 싱그럽고 그래서 돋아나는, ‘시작’과 관련된 이미지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봄은 잔인해질 수 있다.
나는 봄이면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 속 봄이 떠오른다. 솔직히 쓰자면 거짓말을 조금 보탰다. 보고 나면 마음에 티가 묻은 것처럼 찝찝해지는 그의 영화가 곧바로 떠오를 리가. 그런데도 하고많은 봄 중에 하필 나카시마 테츠야 영화 속 잔인한 봄을 떠올린 이유는 그의 영화 속에는 여느 봄과 달리 징글징글하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영화 <고백>은 벚꽃이 날리고 화단에 탐스러운 꽃이 핀 계절, 자신의 제자 둘의 만행으로 하나뿐인 딸을 잃은 교사 유코가 벌이는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의 복수극이다.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 속 마츠 타카코의 얼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 속 그의 얼굴이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마츠 타카코가 분한 중학교 교사 ‘유코’는 봄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고백한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다. 사고로 죽었다고 알려진 자신의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다.’ 이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아주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두 사람(범인들)이 마신 우유에 무언가를 조금 섞었어요. 에이즈에 감염된 사쿠라노미야 선생님의 피예요. 둘 다 남김없이 마셔줬죠. 고마워요.”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유코는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보호받게 될 범인들, 소년 A와 B에게 그녀만의 방법으로 벌을 주겠다고 선언하며 종례를 마친다. “봄은 꽃, 나무, 풀, 새, 사람. 모든 생명이 자라나는 계절이예요. 여러분 모두 유익한 봄방학을 보내기 바라요.” 이 대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덩달아 의미심장해 지는 순간이자, 이 대사를 하는 마츠 타카코의 얼굴은 <4월 이야기> 속 그의 얼굴과는 대비되어 기억되는 대목 중 하나이다.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 중 또 하나 떠오르는 작품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인데, 이 영화 역시 호불호가 강한 작품 중에 하나다. 뮤지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관객뿐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마저 영화의 내용, 과장된 연출 때문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감정을 갖게 만드는 영화라지만 나는 이 영화를 꽤 여러 번 반복해 봤다. 분명히 이 영화에 열광했던 것은 아닌데 뮤지컬까지 보러 갔던 것을 보면 내 안에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긴 있는가 보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은 말 그대로 마츠코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인데, ‘혐오스러운’이라는 말이 마츠코에게 붙은 말인지, 그의 인생을 수식하는 말인지는 고민해볼 일이다. 마츠코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동생을 향한 편애 속에서 자랐다. 마츠코는 몸이 약한 여동생보다 항상 뒷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간 놀이공원에서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리자 아버지가 웃는 것을 본 후, 그것이 자기 인생의 해결점인 듯이 난처한 상황이 닥치면 딸꾹질처럼 얼굴이 일그러지는 이상한 여자가 되었고, 살면서 맞닥뜨린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빠진 선택을 반복하며 인생이 망가지게 된다.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밝다. 가슴을 후벼파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핑크빛이 난무하고 여기저기 꽃이 피어있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이 영화 속에서 보이는 봄의 이미지는 저마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만 같다. 자연스럽지 않고 여름이나 겨울의 기세를 본받는 것만 같다.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 속 봄은 하늘 한 꽃잎이 등장하거나 생동하는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따뜻하고 싱그럽지 않다. 그래서일까. 내 머릿속에서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 속 봄이 한번 각인된 후 잘 잊히지 않는다. 누구든 행복할 것만 같은 봄에도 사건은 벌어지고, 그 소용돌이 속에 홀로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봄’ 영화가 다른 위로를 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위로라는 말이 그의 영화와 어울리는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봄에도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호불호가 강한 영화라 섣불리 추천하긴 어렵지만, 조금 다른 봄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고백> 속 잔인한 봄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속 징글징글한 봄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헤이든
"선우정아의 <봄처녀> 뮤직 비디오 보시고 기분 씻으세요오. https://youtu.be/SO7L9Lwe8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