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기에 살았던 공룡 스피노사우루스의 새로운 복원도가 고생물학계에서 잠시 화제가 되었더라고요. 등에 커다란 돛이 달린 인상적인 모양새가 특히 유명한 공룡이었습니다만, 새로이 발견된 꼬리뼈 화석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피노사우루스는 꼬리도 지느러미처럼 되어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이 큼지막한 녀석이 현대의 악어처럼 주로 물 속에서 살았으리라는 추측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죠. <쥬라기 공원 3>에서 프랜차이즈의 상징인 티라노사우루스와 싸워 석연찮게 승리했던 스피노사우루스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그런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나 한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거대한 돛이 달린 중생대의 악어 공룡 이미지가 적어도 제게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지네요. 스피노사우루는 원래부터 좋아하는 공룡이었고, 각종 기계-공룡-병기를 다양하게 선보인 타카라토미의 ZOIDS 시리즈 중에서도 스피노사우루스를 모티브로 한 다크 스파이너를 두 번째로 좋아했고……좋아하는 공룡이 학계에서 계속 새로이 조명받는다는 건 예상 외로 신나는 일이네요.
이런, 공룡 좋아한다는 얘기를 계획보다 좀 더 신나게 떠들고 말았군요. 제가 이 글을 어린이날에 쓰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어린이들은 공룡을 좋아하고, 어린 이산화도 공룡을 좋아했으니까요. 먼 옛날에 살았던 무시무시하고도 다양한 괴물들 이야기는 시대가 변하고 학계의 대세가 바뀌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많은 어린이가 공룡 책을 읽고, 공룡 이름을 외우고, 공룡 장난감을 사고, 프테라노돈과 엘라스모사우루스는 분류학상 공룡이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낡고 지친 어른들에게 설명하려 애쓰고, 때론 무엇이 최강의 공룡이었는지 가리고 싶어하지요. 그러는 와중에 지질학적 역사의 규모를 느끼고, 생태학과 진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배우고, 그 외에 살아가면서 필요하거나 혹은 아무 짝에도 필요가 없을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습니다. 공룡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배드 엔딩을 가르쳐 줘요. 그것도 지층에 남을 만큼 기록적으로 참담한 배드 엔딩 말입니다.
1억 8천만 년 가까이 지구를 당당하게 활보했던 공룡들은, 약 6천 6백만 년 전 유카탄 반도에 충돌한 운석으로 인해(현대 조류의 조상인 분류군을 제외하면) 절멸에 이릅니다. 자연히 모든 공룡 책은 결국 이 대멸종에 대한 설명으로 끝나게 마련이지요. 바로 이것이야말로 공룡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입니다. 공룡 이야기는 생물이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이 한 순간에 끝날 수 있단 것을, 아무리 장대하게 번성해 온 체계라도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단 것을 가르쳐 줍니다. 길버트 키이스 체스터튼의 말처럼 동화가 아이에게 "세상에는 용을 죽일 성 게오르기우스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면, 어린이용 공룡 책은 용이 죄악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운명의 변명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니까 공룡의 멸종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어린이용 <오지만디아스>인 셈이에요. 역사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메멘토 모리가 삼국지의 결말이라면 과학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메멘토 모리는 중생대의 종언입니다. 피할 수 없는 배드 엔딩의 존재를 처음으로 명확하게 인지시켜 주는 장대하고 비극적인 서사시의 끝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19 범유행 사태의 여파로 서울국제도서전 일정이 변경되었습니다. 일상이 많이 바뀌었고, 해외의 일상은 더욱 더 크게 요동친다는 소식을 매일같이 전해 듣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고 범유행 시국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가끔씩은 제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프롤로그쯤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설마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면서 열심히 낙관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멸망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요? 올 여름이 기록적으로 더울 거란 소식을 얼핏 보았는데, 날이 너무 더워지거든 집에 틀어박혀서 어린이용 공룡 책의 교훈을 되새겨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 같네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이산화
“SF 작가. ZOIDS 시리즈 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건 데스 스팅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