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할까, 딱히 무식했던 것도 아닌데 어릴 때는 조금 몸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조용하다 하지만 나는 4형제의 장남이었고, 공으로 하는 운동을 꽤 좋아했으며 때로는 과격한 놀이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양쪽 팔 합쳐 11번이나 관절이 빠졌고, 두 번의 팔 깁스와 한 번의 다리 깁스를 경험했다.
밤중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그 봉투 안에 든 깨진 박카스 병에 무릎을 찔려 아직도 흉터가 선명하고, 취사병 시절에는 급한 마음에 칼질을 하다가 중지의 절반을 날릴 뻔한 적도 있었다. 3층 옥상에서 떨어졌던 적도 있었고, 맹견에게 쫓겨 그야말로 엉덩이를 다 뜯어먹힐 뻔했던 경험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농구를 하다가 샤킬 오닐 정도 되는 선수에게 스크린이 걸리며 그대로 허리 디스크가 터졌던 적도 있었다. 손목과 발목은 수시로 접질렸고 알 수 없는 상처 역시 줄줄 달고 다녔다.
그럼에도 위험하고 더럽지만 단기간에 돈을 많이 주는 아르바이트만 찾아 다니기도 했다. 그런 한편 대학 생활에도 열심이어서 시험기간이면 사흘밤 정도는 기본으로 샜다. 생명력과 체력을 미리 끌어다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 결과 언젠가부터 눈에 띄게 체력이 안 좋아 지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겨우 앉아서 글만 쓰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전업 작가 역시 육체노동자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나는 자주 아팠는데 정신력은 개뿔, 그냥 더 이상 견디기 싫은 어떤 시점에 이르고 말았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병원만 왔다 갔다 했다. 회복의 속도는 더뎠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리 큰 상처가 나도 빨간약 한 번 바르고 대일밴드 며칠 붙이고 있으면 다 나았고, 발가락이 부러져도 한 달이면 뚝딱 붙었으며, 터진 디스크도 시술 한 방에 나았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아픈 만큼 회복 역시 느려졌다는 것을, 나는 하도 자주 맞아 팔에 자국을 남긴 수액 바늘을 보며 깨달았다.
그럼에도 역시 한 줄기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 것은 회복의 법칙을 알기 때문이다. 겨울은 지나가고, 봄은 찾아오며, 마른 가지에 다시 꽃이 핀다. 상처가 깊어도 새살은 돋으며 금이 가거나 부러진 뼈도 끝내 붙는다. 신기한 일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원래의 찬란하고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이 기적과 같은 법칙 앞에서 나는 또 작아진다. 나보다도 훨씬 몸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와 거의 매일 안부 전화를 주고받는다.
좀 어떠세요? 내가 물으면 어머니는 어제보다는 낫다, 라고 대답하신다. 어제보다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것, 그것이 회복의 법칙임을 나는 흉흉한 이 시대와 삶의 기나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새삼 깨닫고 있다.
모두 안녕하기를 바란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전건우
“곧 안전가옥과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빨리, 재미있게,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쓸 테니 기대해주세요. 79년 생 한국 남성 작가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전건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