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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와… 류츠 신의 닌자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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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래에는 류츠 신의 《삼체》 3부작에 대한 적나라한 스포일러가 있다. 아직 《삼체》를 읽지 않았고 스포일러에 민감한 성격이라면 글을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두 달 전에 류츠 신의 《삼체》 3부작의 증정본을 받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지만 내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장편보다 단편을 선호하고, 대하 장편은 특히 힘들어한다. 거기다 번역본보다는 원서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원서가 중국어니까. 나는 중국어는 커녕 한자도 못한다. 1에서 10까지 한자로 쓰지도 못한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기까지만 했는데 책장에 박아만 두자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나는 책을 펼쳤다.
《삼체》에서 묘사되는 우주는 지성체로 바글바글하지만, 대단히 엄혹한 공간이다. 우주에 있는 지성체들에게 다른 지성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재앙이 될 수 있는데, 어느 짧은 시간 안에 기술을 폭발적으로 발전시켜 우리의 세상을 산산조각 내놓을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초고도문명들은 지성 있는 문명을 발견하는 족족 파괴하고, 지성 문명들은 우주에서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류츠 신은 이러한 우주를 ‘암흑의 숲’이라고 묘사한다. 우주는 암흑의 숲 속에서 사냥꾼들이 몸을 숨기고 돌아다니다 다른 사냥꾼을 만나는 순간 먼저 그를 제압하는 모습이라는 거다.
1부는 그 암흑의 숲에서 인간이 지구의 좌표를 노출시킴으로 인해 다른 문명의 선전포고를 받게 되는 이야기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불행은 빼놓지 않고 속속들이 다 겪은 중국의 과학자 예원제는 중국의 외계 통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인간에게 극도의 환멸을 느끼는 그녀는 태양을 증폭기로 사용하여 외계 문명에 지구의 좌표를 전달하는데, 그 좌표를 받은 문명이 바로 삼체 문명이다.
삼체 문명은 항성 세 개에 둘러싸인 행성에서 발달한 문명인데, 항성 세 개가 인력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공전하는 궤도를 계산하는 것은 ‘삼체 문제’라고 해서 수학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다. 그 극도로 불안정한 궤도 때문에 삼체 행성은 낮과 밤이 종잡을 수 없이 오가고, 삼체 문명은 그야말로 강하게 자란다. 그런데 항성이 딱 하나만 있는 살기 좋은 낙원인 지구가 좌표를 보낸 것이다. 지구인에게는 마법과 별다를 바 없는 수준의 과학기술을 가진 삼체 문명은 보금자리를 옮길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지구로 항성급 함대를 보낸다. 동시에 지성을 가진 양성자인 ‘지자’를 활용하여 지구의 과학기술 발전을 사보타쥬하고 지구인들을 감청한다. 그 방식이 입자가속기의 연구결과를 훼손하여 물리학의 발전을 막고, 기초과학 전반의 정체를 부르는 거라나.
2부는 400년의 카운트 다운 속에서 삼체 문명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솔직히 지금 지구 꼬라지를 보면 내가 죽기 전에 망해도 씁쓸할 뿐 놀랍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인류는 400년 뒤에 올 삼체 함대를 어떻게든 막으려 애쓴다. 이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21세기의 과학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수천 대의 우주 함선이 있는 함대도 만들고, 지구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우주 함대 전체가 삼체 문명이 보낸 탐측선 한대에 전멸한다. 삼체 함대가 침략 전에 “너희는 벌레다!”라고 패기로운 메세지를 보냈는데 진짜 그 말이 맞나 보다.
그런데 수백년 전에서 동면한 뤄줘라는 사람이 영웅적인 업적을 이룬다. 그러니까, 그는 우주 전체에 지구와 삼체 행성의 좌표를 드러내겠다는 협박을 삼체 함대에 보낸 것이다. 좌표를 드러내면 초고도문명이 즉시 반응하여 지구와 삼체 행성을 둘다 곱게 빻아 줄 거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은 거다. 이 상호 확증 파괴에 의해 삼체 문명은 지구에게 GG를 친다.
2부를 덮으면서 나는 기가 막혔다. 류츠 신이 생각해낸 ‘암흑의 숲’이라는 개념부터가 상당히 논리적이었고,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거기다 그 스케일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인물이 일곱 명을 초과하기 시작하면 답답해진다. 그런데 은하계의 다른 문명과 우리 문명이 이토록 지독하게 얽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신명나게 쓰다니! 나는 그의 그런 확장적인 상상력이 부러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1부에서 삼체인 한 명이 ON/OFF를 드러내는 반도체 하나가 되고 여럿이 모여 논리 게이트를 만들며, 수천만의 삼체인이 하나의 컴퓨터가 되는 장면이었다. 아니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생각하지?
내가 책을 읽으면서 피부에 와닿게 느낀 단점이라고는 작가가 좀 마초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2부까지 읽고 나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2부에서 이야기는 닫혔고, 나는 더이상 이야기가 전개될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부가 가장 두꺼웠다.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 3부는 이야기의 결이 조금 다르다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무슨 소설을 썼길래. 나는 궁금증에 지배되어 3부를 펼쳤다. 그리고 나도 곧 얼떨떨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3부에서는, 음, 삼체 문명이 지구 문명이랑 평화 협정을 맺고, 앞에서 말한 지성 있는 양성자인 지자가 양성자에서 로봇으로 탈바꿈한다. 이 지자는 카타나를 능숙하게 휘두르며 다도를 즐기고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일본 미소녀 닌자 로봇이다… 이 묘사에는 단 하나의 과장도 없다. 하여튼 삼체 문명이 지구 문명의 좌표 공개 방식을 사보타쥬하고 잠시 삼체 문명이 지구 문명을 정복하는 듯 싶지만… 결국 2부에서 만들어진 그 상호확증파괴 전략이 실시된다. 지구와 삼체 문명의 좌표가 우주 전체에 공개된 것이다. 초고도문명이 삼체의 세 항성 중 하나에 광립을 발사하고, 삼체 행성은 으깨진다. 지구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공포에 떨면서 목성에 우주 도시를 만들어 살기 시작한다. 그러면 태양이 팽창해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구인들이 목성에 우주 도시를 만든 건 삽질이었다는 게 곧 드러난다. 이번엔 초고도 문명이 광립이 아니라 2차원 벡터 포일을 발사한 것이다. 이 무기는 말 그대로 공간의 차원을 하강시키는 무기고, 태양계는 전부 2차원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들은 몰살당한다. 주인공이 워프 드라이브가 달린 우주선을 타고 간신히 도망치며,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 문명들은 공간 차원을 저차원 공간으로 하강시키는 방법을 이용하여 공격하고, 워프 드라이브로 공간을 왜곡시켜 광속 상수를 낮추는 방법으로 이를 막는다. 이런 역사가 끝도 없이 반복되다보니 우주는 원래 10차원이었는데 3차원까지 내려갔고 광속은 무한했는데 지금의 느린 속도가 됐단다! 이건 끝없이 중첩돼서 우주가 0차원, 광속 0으로 돌아갈 수도 있댄다. 초고도문명에서는 이렇게 되면 다시 우주가 리셋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망해가는 우주를 견디지 못하고 주인공을 비롯한 지성종족들이 소우주를 만들어서 도망친다. 주인공이 도달한 소우주에서 그는 소우주의 관리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관리자는 놀랍게도… 지자다. 외계 문명이 보낸 대사이자 카타나를 능숙하게 휘두르며 다도를 즐기고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일본 미소녀 닌자 로봇이 맞다. 나는 "647호 우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이 우주의 관리자입니다."라는 대사를 미소녀 닌자 로봇이 치는 것을 보고 실존적 고뇌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대우주에서 소우주로의 질량 유실이 일어나서 우주의 빅 크런치 => 빅 뱅이라는 순환이 일어날 수가 없게 된다. 대우주에 있는 지성종족이 소우주로 도망친 종족들에게 질량을 돌려달라는 회귀운동 성명서를 보낸다. 그 성명서는 157만개의 언어로 쓰여 있다. 결국 주인공은 대우주로 기꺼이 돌아가 약속된 파멸을 맞는다. 우주를 살리기 위해서.
3부를 덮으면서 나는 그야말로 상상력이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것을 목도한 느낌이었다. 이 소설은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소설의 스케일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웅장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보다 커다란 스케일은 보기 힘들 거 같다. 평행우주가 차례로 대폭발하는 정도의 소설이 아니라면… 나는 내가 이런 글을 결코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경외감을 느꼈지만, 왜 사람들이 3부를 말하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지도 알 것 같았다. 너무 머나먼 이야기를 하니까 분위기를 따라갈 수는 있는데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1부는 한많은 일대기와 장엄한 실패, 2부는 가장 위대한 블러핑이었다면 3부는 갑자기 별나라 여행이 되는 느낌이랄까. 우리 나라에 매직 머쉬룸이나 LSD가 합법이었다면 도핑을 시원하게 한 다음에 읽어봐도 즐거웠으리라.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심너울
"하지만 그래도 외계 문명이 보낸 대사이자 카타나를 능숙하게 휘두르며 다도를 즐기고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일본 미소녀 닌자 로봇은 좀 너무했다는 느낌이다. 고양이 귀랑 꼬리도 달아주지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