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가 출판된지도 벌써 3개월이 넘었다. 4월에 기분좋은 연락이 왔다. EBS FM의 오디오 천국에 있는 <자작나무 숲에서 작가를 만나다>라는 한 시간짜리 코너에 나를 출연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짜리 라디오 녹음이라니! 나는 약간 외향적인 사람이고, 헛소리하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돈 받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떠들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마다할 리가 없었다.
녹음하러 에이전시 대표님과 함께 2주 전에 일산에 있는 EBS에 갔다 왔다. 작가분께서 나를 웃으면서 반겨 주셨다. 대본을 받고 대기실로 향했더니 물이 있었다. 대본은 간단한 여러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대본에 대충 어떻게 답해야 할지 적어놓고 나니 피디님이 나를 스튜디오로 불렀다. 피디님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테랑이었다.
녹음 스튜디오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니 정말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맞다, 지나치게 당연한 일이다. 라디오 녹음 스튜디오에서 바깥 소리가 들릴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들어서 그렇게 아는 것은 정말로 다른 일이다. 나는 그 완전한 정적에 감탄했다. 내 자리에 앉자 마이크와 모니터 헤드셋이 준비되어 있었다. 헤드셋을 차고 말을 하면 내 목소리가 그대로 헤드셋으로 돌아왔다, 초고음질로. 내가 인식하는 내 목소리와 타인이 인식하는 목소리를 동시에 듣는 것은 기기묘묘한 경험이었다. 당연히 마이크도 극도로 민감해서 내가 의자를 움직이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편집에 해가 되지 않게 나는 최대한 잡음 없는 자세를 유지한 채로 말을 해야 했다. 종이를 넘기면서 동시에 말을 하면 안 된다!
한 시간 넘게 헛소리를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방송을 들은 친구들이 몇 마디는 괜찮다고 해 주었다. 예를 들면, “환상 소설을 왜 쓰냐구요? 저는 왜곡으로 더 잘 보이는 게 있다고 생각해서요. 광학 현미경을 생각해 보죠. 광학 현미경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 작은 것을 매우 크게 확대하여 볼 수 있습니다. 세균도 볼 수 있고, 네. 그런데 이 현미경은 결국 빛의 특성을 이용하여 상(狀)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저는 환상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 지금 써놓고 보니 괜찮은 비유다. 앞으로 종종 써먹어야지.
그런데 문득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그 고요한 방에서 말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대단히 긴장해서 그 날 먹은 점심 메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할 것 같았으나(점심에는 쌀국수를 먹었다) 점점 긴장이 풀려 온갖 아무말 대잔치를 펼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생방송에서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해서 비난을 받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이제 그들을 너무 과도하게 비난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이상한 말보다 이상한 글이 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말은 하다보면 말을 하는 행위 자체가 다른 말을 이끌어내서 생각을 안 거치고 말하기 쉬운데, 글쓰면 싫어도 자기가 쓴 글을 계속 확인하게 되고 생각이 정리가 된다. 이상한 말을 하는 건 너무 흥분해서 필터링이 잘 안 된 정도의 문제라면, 이상한 글을 쓰는 건 스스로 쓴 글을 보고도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내 무덤을 파는 일이다. 왜냐, 나는 글로 드러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지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었다 해놓고 이런 글을 쓰네?”하는 비난을 분명히 들을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어쨌든 라디오 녹음은 대단히 재미있는 일이었다. 작가 일은 금전적으론 보람차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기 힘든 대단히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겁다. 라디오 스타는 못 돼도 이런 경험을 계속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방송은 다음 주소에서 들을 수 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심너울
“6월 1일 새 단편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를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많이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