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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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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써야 하지, 라는 생각만 다섯 시간 했다. 11월 초부터 말까지 거의 쉴 틈 없이 일정이 있었고 (중간중간 달력을 보면서 흠 그래도 여기쯤 여백이 있네 생각할 때마다 거짓말처럼 거기에 일정이 생겼다) 그 장정의 마침표는 월간 안전가옥으로 찍게 되며 11월의 다른 일정들은 거의 늦거나 밀린 것 없이 올 클리어를 했기 때문에 이번 원고도 깔끔하게 해치우고 싶은데 대체 뭘 쓰면 좋단 말인지…… 물론 다섯 시간 정도를 손 놓고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아니고, 서로 다른 서너 가지 주제로 두어 문단 정도를 쓰다가 지우기도 했고, 중간중간 유튜브 <신화방송>을 보면서 귤을 까먹기도 했고, 소쿠리에 귤을 리필하려다가 앗 이거 큰일이네 하면서 곰팡이 핀 귤을 골라내기도 했고, 아무튼…… 고민하다 그냥 손에서 나오는 대로 쓰기로 했다.
정해진 주제 없는 에세이라면 뭐 24/7이라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 보니 그렇지가 않다. 특히 이번 달 몫을 써 내기가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1. 근 한달 여 사이 내 삶에 그리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바쁘게 이것저것 했으니 할 말이 많아야 옳겠는데 그 바쁜 일이란 대부분 지원사업 신청이나 에세이 쓰기 같은 것이었고 딱히 밖에 나가 바람 쐴 일도 없었고…… 새로운 얼굴은커녕 익히 아는 얼굴들도 별로 마주하지 못했다. 즉 집안 한 자리에 앉아 무슨 얘길 더하기도 어려운 마감을 하염없이 반복했을 따름이라 떠오르는 글감이란 온통 내면이나 과거를 향하고 있는데,
2. 자유 주제 에세이에서 내면이나 과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이유는 별 거 없다. 필연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어조가 될 만한 이야기들밖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작가로서) 밝혀야 할 사연들이 있다는 것은 나도 의식하고 있으나, 내 삶에 얽힌 논픽션이 내가 쓰는 픽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아직은. 말하자면, 저 사람이 이러이러한 소재와 모티프를 즐겨 쓰는 것은 어렸을 때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라고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지만, 그런 힌트를 일찌감치 주지 않으려는 것만은 내 마음이지 않나.
조수미 씨가 30년도 더 지난 유학시절 일기를 공개한 게 불과 작년 일이라고 한다. 로마에 도착해서 쓴 첫 일기는 그가 유학 생활 내내 지킬 원칙을 담은 것이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조수미 씨는 이렇게 쓴 다음, 원칙을 철저히 지키되, 30년 넘는 세월동안 비밀로 했다.
언젠가 내게도 이제는 말해도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길까?
종종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어디서 들었더라 고민하다 결국 검색 엔진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머리말이라고 한다. 내가 그걸 언제 읽었지?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중간중간 삭제한 문단이 있어서 글이 좀 덜그럭거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