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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의 애벗과 코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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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멤버
Column
Written by 가디언 멤버 OU
*이번 안전가옥은 영화 <Arrival>(한국은 <컨택트>로 개봉)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인류의 과학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짐에 따라, 여지껏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여겨오던 ‘시간’에 대한 인식도 변하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표현처럼 일정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사실은 ‘시공간’으로 공간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고, <인터스텔라>에서 가르간투아 블랙홀에 가까운 행성에 다녀오는 장면에서 잘 표현됐다시피 각각이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하지만 단순히 상대적으로 느리거나 빠른 것이 아닌, 아예 과거 혹은 미래를 오가는 것은 가능할까? 이러한 질문 또한 많은 소설가들과 영화 제작자들을 설레게 했고, 실제로 우리는 시간여행에서부터 타임 패러독스, 타임 루프 등 다양한 시간에 대한 사고 실험을 바탕으로 하는 흥미로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이러한 ‘시간’에 대한 묘사를 가장 세련되면서도 서정적으로 묘사한 작품 중에 하나로 <Arrival>’, 특히 영화 버전을 꼽고 싶다. 2016년에 한국에 <컨택트>란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는 내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지난달에 집에서 한가하게 넷플릭스를 뒤져보던 중 다시 눈에 들어와서 또 한번 관람을 하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 박사가 마지막 장면에 ‘비록 이 여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과정과 순간을 환영한다’라는 대사를 읊을 때 올라오던 전율이란. 이러한 운명론적인 결론을 조금 더 건조하게 표현한 소설에 비해서, 영화는 연출을 통해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설령 아는 미래를 마주한다고 하더라도 그 감동이나 행복, 슬픔이 바래지 않기에 충만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아주 세련되면서도 강렬한 감정으로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헵타포드를 묘사한 방식을 좋아했던 것 같다. 신비로우며, 동시에 어딘가 기괴하고 흉측하기도 한 외계인스러운 모습을 잘 살렸고, 하지만 그런 외계인들이 차분하고 인내심을 가진 채 인류에게 자신들의 언어 체계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숭고함까지 추가했다(소설에서는 보다 기계적으로 나온다).
그리고 애봇과 코스텔로라는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유명 코미디언의 이름을 붙였던 것도 어쩐지 헵타포드들을 귀엽게(?) 느끼게 만든 포인트기도 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외계인을 다룬 작품들에서 그들을 아예 초월적이며 자애로운 존재나, 아니면 아예 적대적인 존재로만 묘사하던 와중에서 ‘합리적인 이방인’을 만나 의사소통 장애를 겪지만 결국 뭔가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스토리 전개 자체가 신기했던 것도 있고.
하지만 이런 표현과 연출을 넘어, 애봇과 코스텔로가 2020년 상반기 최애캐에 등극한 이유는, 결국 ‘운명론’을 주제로 했으면서도 등장 인물들이 신적 존재로 묘사되는 히어로물도, 좌절하는 코스믹 호러도 아니고 담담하게 ‘과학적으로 있을 법한’ 묘사로 등장케 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워 과거와 미래를 동일선상에서 인지할 수 있다면, 나 또한 루이즈 뱅크스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가디언 멤버 OU
"생각해보면 비록 딸을 잃는 슬픔을 겪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루이즈 뱅크스였기 때문에 담담했을 수도 있겠네요. 만약 내내 학대당하다가 끔살당하는 루트였으면 너무 잔인한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