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디에서도 꺼내지 않는 이야기 인데 드디어 글로 쓰게 되네요.
저는 사실 약 10년간 8시간 이상 잠을 푹 잔 적이 200일을 넘지 않는 거 같아요. (너무 드문 일이라서 카운트를 하곤해요.) 늘 3시간 자고 나면 깨고, 억지로 다시 잠을 청하고 일어나서 그런지 저는 할머니들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나물 캐러 가시는게 너무 이해가 되요. 오전에 밥먹고 낮잠 자는 것도요. 이런 할머니를 둔 건 아니지만 왜 티비나 영화에서 꼭 나오잖아요. 손자랑 손녀 오면 밥 잘 챙겨주려고 아침 일찍 부터 준비하는 그런 할머니들.. 그래서 그런지 꽤 오래 전부터 난 손자 손녀들에게 사랑받는 할머니, 슈퍼 파워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용돈 잘주고, 요리 잘하고, 함께 뭐 만들고 놀 수 있는 할머니… 하지만 이대로 살다가는 할머니는 커녕 120세 시대에 60세까지 살아도 잘 사는 거 아닐까 싶어요. 오래도록 꿈만 꾸다 죽고 싶지는 않아서 사실 삶을 바꾸어 보고자 안전가옥에서 일하게 된 것도 사실이구요. 빌런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로망을 말해버렸네요.
한동안 잠잠했어요. 요즘 들어 잠을 잘 자는 날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는데요. 어제 제 악몽의 역사에서 팔할의 지분을 차지하던 슈퍼 빌런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꿈 내용은 대략 이래요. 제가 자전거 같은 거를 타고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어느 순간 굉장히 가볍고 손쉽게 오르막을 오르더니 하늘 높은 곳까지 막 날아가는 거에요. 여기까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멀리서 저처럼 하늘을 부유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자전거를 버리고 그 쪽을 향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하늘을 수영했어요. 아뿔싸. 다가가보니 그 사람이 제가 극도로 싫어하는 꿈 속 슈퍼빌런 인거에요. 제가 다시 막 도망가려 했는데 이 사람이 제 힘을 빼앗고 저는 끝도 없이 추락해서 어느 빌딩에 도착했어요. 그 곳에는 방마다 다른 이야기 책들로 가득한데 제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게 아니란 건 꿈속에서도 생생히 느껴지는 스트레스로 알 수 있더라구요. 제가 방과 복도를 이동하며 도망치는데 온통 책이라서 정신없이 미로를 헤쳐나가기 어렵더라구요. 슈퍼 빌런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저를 막 쫓아와요. 그리고 저한테 이야기 좀 하자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팔꿈치를 붙잡는 거에요. 그 사람을 뿌리치면서 저는 책장에 부딪혔고, 아파하면서 잠에서 깨요. 저를 쫓아오는 그는 늘 제게 ‘할 말이 있어. 잠시만 이야기하자.’ 고 해요. 저는 얼굴도 보기 싫고 이야기는 더욱 듣기 싫어요. 몸서리 치게 싫어하며 잠에서 깬 저는 이제 꿈 자체보다 ‘내가 왜 또 이런 꿈을 꿨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깨고나니 월간 안전가옥의 마감일이 다가오더라구요.. 하하하.)
곰곰히 빌런이 주로 등장하던 시기를 복기해보니 꼭 제가 방심하고 있는 틈 혹은 뭔가 쫓기는 마음이 들 때 등장하더라구요. 바둑을 둘 때 수읽기에 몰리는 순간 혹은 농구 경기에서 미세한 차이로 이기고 있을 때, 이 경기를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 때 꼭 이 빌런을 만나더군요. 물론 다른 경우도 있지만 제 마음이 이럴 때 빌런은 꼭 끝까지 쫓아와서 속삭여요. “어디를 그렇게 빨리 가려고 하니 내 이야기 좀 들어봐” 하구요. 이 꿈 이야기를 쓰면서 처음 깨달은 건데 이 빌런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네요.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이 꿈 속 빌런은 실제 제 삶에도 등장한 적 있었답니다. 귀를 닫고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만큼 싫은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끈질지게 제 꿈을 찾아옵니다. 먼 과거지만, 현실에서도 나는 이 사람에게 내게 왜 그랬냐고,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어요.
조금의 발전도 없는 나인거 같아 답답하지만 이제라도 제 자신과 악몽, 빌런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릅니다. 내 삶을 바꿔 줄 슈퍼 히어로를 찾아 헤매기 보다 내 안에 도사린 슈퍼 빌런을 없애는 것이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만약 빌런을 없애는 것도 강박이라면 도망치다 뒤돌아서 눈을 똑바로 보며 물어봐야 겠습니다.
‘너 대체 왜 날 쫓아다니는거니?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거야?’ 라고.
제 안의 빌런을 잘 다스리면, 언제가 저도 꼬마들에게는 슈퍼 히어로 할머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현실에서 좀 더 건강하면 꿈에서도 조금 더 능숙하게 대항할거라 믿으며 오늘도 참을성있고 건강하게 공모전 원고를 기다리려고 합니다.
오겠죠? 제 안의 빌런마저 한 방에 날려 버릴 그런 멋진 히어로 이야기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레미
"자나깨나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공모전 생각 뿐이랍니다. 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