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rch
🤷🏻

납득 가능한, 이해 불가한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2030년 7월 11일, 5년차 경력의 일러스트레이터 명은은 지우컨텐츠라는 회사의 대표 이지우에게 메일을 받았다. 지우는 이메일로 자신이 명은의 포트폴리오를 우연찮게 보았다고 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언제 한 번 특채 면접이라도 보라고 알렸다. 명은도 그 컨텐츠 회사의 이름을 여기저기서 들어본 적이 있었고, 프리랜서 생활도 청산하고 싶었다. 그가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자 곧 면접 장소와 시간을 알리는 메일이 날아왔다.
면접 장소는 지우의 메일 서명에 적혀있는 강남 테헤란로의 사무실도, 동대문구에 있는 컨텐츠스타트업센터 369호도 아니었다. 바로 지우와 명은의 집에 있는 컴퓨터 앞이었다. 면접은 바로 다음 날 오후 두 시에,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명은은 부랴부랴 당근마켓에서 유튜브 크리에이터 입문자 키트를 중고로 하나 구매하고 마이크와 웹캠을 컴퓨터에 설치했다. 익숙하지 않은 인터넷 회의 프로그램도 설치해야 했다. 명은은 그날 밤 강남의 사무실 근처에서 자취를 하려면 얼마나 돈이 드는지 검색하면서 온갖 공상을 펼치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명은은 오랜만에 오전 여덟 시에 기상했다. 오랜만에 얼굴에 살짝 힘을 주고, 3년 전 외할머니의 장례식 때 마지막으로 입었던 세미 정장을 꺼내 먼지를 툭툭 털었다. 이지우가 알 수 있을 리도 없건만 그는 양치질도 평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하고는 약속한 시간에 인터넷 회의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디지털 면접에 참여했다.
명은의 모니터에 앳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지우였다. 이것은 단독 면접이었던 것이다. 명은은 잠시 당황했다가, 지우가 비록 자기 이름을 단 회사의 대표지만 자기보다 열 살 어리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지우는 이제 21살이었다. 명은은 자기가 그 나이일 때 무얼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비싼 등록금 내고 인강이나 듣고 있었지, 에휴.
처음 몇 분 동안 지우와 명은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명은은 지우가 그 어린 나이에 창업을 성공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우는 명은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던 작품들의 특징과 장점을 조목조목 짚어 주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는 곳이라면 강남에서 월세를 빨리면서 사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명은은 생각했다.
면접의 막바지에 지우가 이렇게 묻지만 않았으면, 모든 게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 그런데, 00년생이신 걸로 아는데…”
“네.”
“사실 저희 회사는 지금 최연장자가 07년생이거든요. 인원이 많은 건 아니고, 그리고 능력은 나이와 상관 있는 건 아니지만… 시대가 2030년인데, 제가 저보다 나이 많다고 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거리껴 하거나 하는 일은 없지요. 다만,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원격으로 회의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지우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곤란하네요. 저희 회사에서는 따로 사무실이 없어요. 법인 주소지가 있긴 하지만 여기는 그냥 제가 사는 오피스텔이고. 모든 업무들을 완전히 원격으로 처리하고 있거든요. 사실 그게 우리 회사 연령대가 이렇게 어린 이유기도 해요. IT기업이면 앞 세대에도 이런 데 능숙한 사람이 많은데, 아무래도 저희는 산업이 좀 다르다 보니.”
“빠르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 인터넷 강의도 들었는걸요.”
“그런가요? 하지만 저 뒤에…”
명은은 그제서야 자기 화면 뒤에 떠오른 배경을 바라보았다. 너저분한 명은의 방이 명은의 얼굴 뒤로 언뜻언뜻 눈에 띄었다. 명은은 화면 속의 자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생각해보면 학부 시절 이후로 이런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쓴 일이 없었다. 지우가 웃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사실은, 이게 다들 느끼거든요. 저희들은 어릴 때, 뇌가 꼬들꼬들하고 변화에 유연할 때 갑자기 언택트 상황이 닥쳤고… 그러다 보니 앞 세대 분들보다 더욱 강하게 적응한 거에요. 어릴 때부터 카메라에 비치는 화상만으로 상호작용 해온 세대랑 그렇지 않은 세대 간에는 뇌 회로부터 조금 다르다고 할까. 작가님 세대의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함께 태어났기 때문에 그 앞세대보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데 있어 극도로 능숙한 것처럼 말이예요.”
“하지만…”
지우는 천장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뇨, 그건 작가님의 잘못이 아니지요. 생각을 좀 더 해보아야겠습니다.”
명은은 표정을 숨기려 애써야 했다. 아니, 내가 적응을 하든 말았든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면 뭣하러 나를 부른 거야? 그때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지우가 말을 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면접비는 저희가 드릴 테니까…”
“면접비요? 제가 뭐 어딜 가서 면접한 것도 아닌데…”
명은은 그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인상을 찡그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느라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작가님. 화상 면접도 면접이고, 작가님의 참여에 대한 정당한 대가입니다. 이런 데서 차이점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원격으로 하는 일이 실제로 만나서 하는 일과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그리고 그것이 명은이 마지막으로 들은 지우의 목소리였다. 그 날이 지나기도 전에 명은은 아쉽지만 함께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지우의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 외로 많은 면접비도 받았다. 지우는 이상할 정도로 솔직했다.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겠다고 밝히면서도 그는 동시에 가끔 외주를 진행해줄 수 있을지 부탁했다. 명은으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후, 실제로 명은은 지우의 회사와 함께 여러 번 일할 기회를 얻었다. 지우컨텐츠는 놀라울 정도로 괜찮은 거래처였다. 조건도 관대하고, 정산도 빠릿빠릿했고, 수정을 여러 번 하면서 괴롭히지도 않았다. 식사 따위를 권하지 않는 것도 편했다. 명은은 회사 담당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끝끝내 알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명은은 성공적으로 취직하고 프리랜서 생활을 접는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강남에 월세를 잡을 계획을 짜던 자신의 모습을.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하지 못하면, 평생 공감할 수 없는 바가 있을까? 하긴 외국어를 배울 때도 나이 들어서 배우면 결코 익힐 수 없는 세밀한 뉘앙스가 존재한다는데, 생활 방식이라고 다를까.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은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10년의 차이가 이토록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명은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명은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명은을 딱히 배려해주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심너울
"소설이 그 절반 분량의 에세이보다 더 쓰기 편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