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멤버들의 7월 월간 안전가옥은 "2020년 상반기 나의 최애 캐릭터"라는 주제로 작성되었습니다.
안전가옥에서 일하는 운영멤버들이 2020년 상반기에 본 어떤 영화, TV쇼, 책, 만화, 다큐멘터리 등등에서 어떤 '최애캐'를 찾았는지 함께 살펴봐요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테오가 본 콘텐츠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희망장
소설
미야베 미유키
동네 탐정은 어떻게 동네에서 살아가는가, ‘스기무라 사부로’
안전가옥에서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업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읽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보기’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유행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는지, 또 어떤 이야기가 가능성 있을지,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읽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좋은 이야기는 정말 많고, 이야기 자체는 더욱 많죠. 그렇기에 항상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차근차근히 해나가려고 합니다. 마침 이번 월간 안전가옥 주제가 ‘2020년 상반기 나의 최애 캐릭터’이기에 ‘읽기’ 영역에서 올해 상반기 저를 사로잡은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그 캐릭터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자면,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a.k.a 미미여사)의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주인공인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탐정입니다. 행복한 탐정 시리즈는 미야베 월드(현대물)에서도 유일하게 탐정 캐릭터를 구축해온 시리즈물이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의 최신간으로 올해 4월에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신간보다 먼저 나온 《희망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시리즈에 빠져들었습니다. 위 두 편을 제외하고 《누군가》,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까지 총 5권의 이야기가 시리즈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중요한 것은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캐릭터인데요. 이 사람은 사실 평범한 사람입니다. 물론 자주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결국에는 탐정이 되고, 4권째에 탐정사무소를 차리고, 5권째에 이르러 자신이 진짜 탐정이라는 직업을 제대로 시작했다는 자각을 가진 인물이지만 탐정이 되기 전 그는 출판사 편집자였습니다. 그것도 아동물 전문이었습니다. 우연히 첫 사건을 해결하고, 그 덕분에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데릴사위가 되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셜록 홈스 같은 귀신같은 관찰력과 추리력, 에르퀼 포와로처럼 멋진 콧수염과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한 마디로 명탐정이라고 불릴만한 카리스마는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는 서민생활밀착형 탐정으로 도쿄 한 동네에 사무소를 차리게 되는데요. 그가 탐정으로 맞는 대망의 첫 의뢰인은 이웃인 약국 아주머니의 친한 아주머니로 의뢰 내용은 딸에게 평생 모은 저축을 빼앗겨 가난하게 살던 동네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살아생전보다 부유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며 제가 유령을 본 걸까요 라는 사소한 의뢰. 게다가 의뢰 해결 대가는 일 년간 동네 쓰레기장 청소 면제라는 더욱 소소한 것이지만 그는 이때부터 확실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해갑니다.
그건 카리스마가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해 알아가려고 할 때 그만이 가지는 사려 깊음,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차분한 끈기와 지혜, 의문에 대해 최선을 다해 예의바름을 지키고자 하는 태도가 그를 ‘스기무라’ 탐정으로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서서히 하지만 깊숙이 인식시키게 합니다.
특히 《희망장》에서부터는 사건의 연작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조금 더 친절하게 이야기 세계 속 스기무라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을 것 같은 주변 이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거기에 내재 되어 있는 건 종교문제와 가족 문제, 아주 오래전 벌어진 살인사건,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혼란, 성폭력, 결혼 문제 등 다양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어찌보면 대단한 트릭과 서스펜스는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대신 일상 속에 있는 뒤틀림과 비틀림이 만들어내는 악의와 슬픔 등을 천천히 해결해나가는 그의 행보에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감상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미미여사 특유의 흡입력 높은 문장과 구성은 덤입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와 스토리 아크(Story arc)
보통의 이야기,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이야기와 캐릭터는 사실 분리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분명 이야기 없이 캐릭터 자체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만 이야기에서 캐릭터는 주제를 통해 작품과 연결되며 주제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작품에 드러납니다. 이와 연결되어 현실과 픽션이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다른 점을 꼽는다면 이야기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캐릭터의 행위’입니다. 쉽게 말해 현실과 달리 주인공 캐릭터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를 ‘출발’ 시키기 위해 적을 등장시키거나, 의뢰를 하거나, 큰 보상을 얻게 하여 움직이게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통과의례를 해야하는 것이죠. 통과의례의 결과가 작품의 결과가 되고, 그 결과 여부를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며 이야기 소비자는 본인의 기호에 따라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장르의 관습, 규칙에 따르며 독자의 기대치에 부응하러면 위와 같이 이야기 흐름이 각 책 안에서 완료되어야 합니다. 범인은 누구인지, 범행을 저지른 동기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죠. 작가는 이런 경우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는지, 이 인물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플롯을 전개해나가야 함은 물론 어디에 거짓과 혼란을 배치할 것인지, 어디에 막다른 골목과 장벽을 등장시킬 것인지, 탐정은 이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언뜻 사소해 보이는 어떤 정보가 결국에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고 있어야 하죠. 보통 이렇게 이야기의 흐름, 스토리 아크와 더불어 인물의 흐름, 모험과 시련과 성장 및 보상이라는 캐릭터 아크가 같이 흘러가야 합니다.
다만 시리즈에선 그 흐름이 조금 다릅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 안에서 완결되는 반면 인물의 이야기, 인물의 흐름은 완결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시리즈의 각 권은 그 인물의 인생에서 하나의 장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미스터리에서 범죄 사건은 확실히 책의 결말에 이르러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야 하지만 시리즈에서는 인물의 이야기가 의문과 문제와 변화와 설명되지 못한 부분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의문들과 설명되지 못한 부분은 다음 책에서 해명되거나 혹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성공한 시리즈물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시리즈의 주인공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싶어 하며 사건을 통해 인물이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자 하지만 인물의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결론을 맺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예로 셜록 홈즈가 모리아티 교수와 대결하다 죽었다고 표현한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작가 코난 도일에게 항의하고, 협박하며, 소송을 준비했고 여러 파장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쯤에서 마무리하자면, 이야기 흐름과 인물의 흐름은 동일하게 흘러가는 게 일반적이나 시리즈에서는 각 작품이 나올 때마다 주인공이 자신만의 여정을 떠나는 셈으로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의 다음 여정이 너무나도 기대되고, 기다려지니 제발 작가님께서 건강히 그러면서도 조금은 빠르게 다음 작품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테오
"더 열심히 읽고 보며 저도 언젠간 스기무라 사부로 같은 캐릭터, 행복한 탐정 시리즈 같은 작품을 뜻이 맞는 창작자님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