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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달, 비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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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달에는 좀 궁지에 몰려 있다. 월간 안전가옥의 마감이 이제 한시간 남았는데, 다른 일들을 처리하느라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봐라, 지금까지 항상 존댓말로 써오던 문장도 오늘은 반말로 쓰고 있지 않은가. 도무지 무얼 써야 할지 떠오르는 주제도 없고 해서, 오늘은 그간의 영업 비밀이었던 각종 공모전과 어워드에서 수상한 비결을 풀어볼까 한다. 놀랍게도 내 비결은 바로... 냉장고를 비우는 것이다.
...진짜다.
나는 항상 중요한 일이 있으면 냉장고를 비운다.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집 청소도 하고, 더는 쓸 일이 없는 물건들을 골라 당근 마켓에 내놓는다. 무언가를 비워야 새로운 것이 채워질 수 있다는 믿음. 냉장고를 비운 다음 날 데뷔작이 공모전에 당선된 후로 청소 의식은 우리 부부의 징크스로 자리잡았다. 어차피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은가? 집도 깨끗해지고, 기왕에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도 정리하고, 더우기 좋은 소식까지 들어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미안. 급한 마음에 반쯤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어느정도는 진심이다. 나는 비움과 채움의 과정을 진짜로 믿는다. 사람은 채워야 비울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필요한 재료가 머릿속에 충분히 채워져야만 하나의 작품이 손 끝에서 쏟아지며(볼트 크랭크?), 앞서 작업한 흔적들을 깨끗이 비워낸 후에야 비로소 나는 새로운 작품을 위한 재료들을 다시 채울 수 있다.
10월에 나는 꽤 마음에 드는 중편을 하나 썼다. 그 작품에서 묘사된 유토피아는 너무나 내 취향에 꼭 맞아서,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 평범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이없게도 그 탓에 슬럼프가 왔다. 그 후로 지금껏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미련을 충분히 비워내지 못했기에, 아직 미련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 조급함만 구겨넣느라 오히려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11월 들어 운이 좋게도 상을 하나 탔고, 그 일을 계기로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당분간 글을 쓰지 않아도 좋아. 이번 달은 그냥 비우길 바라. 너는 충분히 했으니까. 자신에게 그렇게 속삭여주었다. 밤새 게임을 했고, 가능한 많은 낮잠을 잤고, 최대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한달이 흐르자 놀랍게도 새로운 재료가 머릿속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능소화를 모티브로 한 짧은 단편 아이디어인데, 아마 12월엔 이 작품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지금처럼 좋은 일들이 이어지는 한 이 편리한 징크스를 마음껏 활용해볼 생각이다. 어제도 나는 필요 없는 목 안마기를 중고 장터에 팔아치웠다. 왜냐면, 내일이 플스5 예약구매 당첨자 발표일이거든.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이경희
"후후후 과연 저는 PS5에 당첨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