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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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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뤽 Rick
솔직히 3월 한 달은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제대로 풀리는 것 같지 않았달까요.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생겨났고 전 좀 황망했습니다. 지난 달 비스트의 ‘픽션’을 운운하며 와 세상 정말 당황스럽다 정도의 푸념을 늘어놓았던 것이 농담처럼 소소해보일 정도로, 이번 한 달은 좀 그랬어요.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그랬어요. 전 미리 공부를 잔뜩 하고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빽빽하게 고민해서 예측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때 편안함을 느끼는 편입니다. (여행할 때에도 가는 곳에 대해 공부를 달달달 하고 가야 성이 풀리는 타입) 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특히 작은 회사는 더 그렇다지만, 안그랬음 좋겠다 싶었는데.. 아니더라고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회는 전에 없던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그냥 해프닝 정도려나 했던 바이러스는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 넣었고,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뉴 노멀’이 온다더라 하는 무서운 이야기들로 넘쳐납니다. 그래서 그런건지 그것과 별개로 그런건지 저는 저대로 컨디션이 별로고, 일은 일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무력했고 종종 속에서 업다운이 일었습니다. 그런 제가 또 썩 맘에 들지 않았어요.
뭐 저보다 힘든 누군가가 있다고 제가 안 힘든 것은 아니겠지만, 이럴 때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당신은 57년생이시고, 큰 아들은 83년생. 전남 고흥에서 나고자라 우체국 공무원으로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어머니는 이런 ‘국가적 비상상황’에 자주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시곤 합니다. 뭐 그럴 만한 것이 저희 어머니의 라떼는 감히 비비기 어려운 꽤 진한 라떼인데, 바로 1980년 5월의 광주입니다.
1980년 광주에 하나 있던 우체국은 시내 한복판 (구)도청 바로 옆에 있었고 어머니는 이모/삼촌들과 그 근처에서 자취를 하셨답니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서로 총을 겨누던 몇 주 동안 어머니는 (지금으로 치면) 자가격리 지침을 받아 집에 있을 수 밖에 없었죠. 총성과 비명과 최루탄 연기는 예고 없이 방으로 흘러들어왔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냥 두려워하며 움츠려있는 것 뿐이었대요.
끔찍하고 잔인한 시절인 것처럼만 느껴지지만, 어머니의 ‘라떼'는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나오지 말래서 집에만 있었더니 오히려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고, 밀렸던 책들을 오히려 몰아 읽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생 난리인 상황에서도 끼니 때가 되니 배가 고파졌대요. 염치도 없이. 바깥은 생 난리지만, 끼니 걱정을 했고 밥과 반찬을 해먹어야 했다네요. 그러면서 생각했대요. 먹고 살아야지 어쩌겠나.
40년도 더 지난 올해. 종류와 상황은 다르지만 그 때 못지않은 난리가 났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터졌고, 모두 움츠러들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시간은 막을 수 없는 일이죠. 지지난주 고향집 뒷산엔 진달래가 한창이었습니다. 지금 서울숲은 벚꽃이 절정입니다. (뭔가 너무 올드한 느낌이지만) 그 자그마한 꽃을 보니 새삼 알겠더군요. 얼어 멈춘 것만 같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요.
2분기가 시작되었고, 사업계획을 고민합니다. 여전히 확 잡히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조직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또렷이 잡히지 않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 고스 온이니, 하루하루 나아갈 수 밖에요. 바이러스 시국에도 꽃은 피고, 계엄군 날뛰는 와중에도 밥은 먹어줘야 하는거니까요. 그리고 그래야 저도 언젠가 ‘라떼는 말이야’ 썰이라도 풀겠죠.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뤽
"라이프 고스 온 하면 전 투팍을 떠올립니다만 요즘 친구들은 무엇이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