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작업실 만들어요. 이제 미룰 수 없어요.”
정말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서 작가님과는 지난해 4월 소개를 통해 만났다. 한참 브릿G에서 <무너진 다리>를 연재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친한 동생으로부터 장르는 다르지만 웹소설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님을 알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덥석 소개를 부탁했다. 공감에 목말라 있었다. 나와 같은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다소 불건전한 이유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서 작가님을 만났고 우리는 작업메이트가 되었다.
함께 작업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둘 다 집에서는 곧 죽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오히려 함께 있음으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단지 힘들었던 거라고는 우리가 자주 갔던 북카페가 도중에 문을 닫았다는 것과, 사람이 많은 날에는 노래를 아무리 키워도 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어왔다는 점, 그리고 가끔은 그 아침에도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
같은 해 여름, 친해진 작가님의 작업실을 다녀온 후 작업실에 대한 생각이 절실해졌다. 서 작가님과 나는 작업실이 생겼을 때 느낄 좋은 점을 나열했다. 많았다. 정말 많았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건 카페를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시간마다 음료를 추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무겁게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 글쓰기 노동에 ‘작업’이라는 멋진 단어를 붙여도 될지 망설여졌다. 우리가 작업실을 구한다고 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예상 답안은 대충 이랬다.
1. 와 정말 좋겠다.
2.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우리는 글을 쓰고 있었지만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작업실은 사치였고 과분했다. 책이 나온다거나 공모전에서 상을 타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우리를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마련하자고 말했지만 같은 해 여름에 서 작가님이 웹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가을에 내 첫 장편소설이 출간됐음에도 우리는 작업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민망했던 것이 가장 컸다. 뭐라도 써냈다고 으스대며 작가라고 하는 꼴 같아서…
그 생각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20년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팬데믹 시대를 예기치 못하게 맞이했고,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카페에 있어 보다가, 각자 집에서 서로를 감시하며 작업을 하다가 기어코 터지고 만 것이다.
“우리 글로 돈 벌고 있잖아요. 그럼 작가지! 뭐가 작가야!”
4월, 연남동에 작업실을 구했다. 집보다 오래 있을 공간이고, 작업하는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일념 하나로 취향껏 꾸몄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마감 달력을 붙였다.
그렇게 작업실이 생겼다. 1년을 내내 고민했던 것과 달리 너무도 뚝딱!
결론을 말하자면 작업실이 생겨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글쓰기 노동자”라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작업실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과분하다고 생각했던 ‘작가’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 붙이는 과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작업실 벽에 마감 달력을 붙이듯이.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천선란
“작업실을 구할 때에는 햇빛이 잘 드는 곳이 가장 중요합니다. 광기 수준으로 채광에 집착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