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도 퍽 좋지 않았다. 악재가 넘쳐났다. 나로부터 시작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힘이 부치는데 내 통제를 벗어난 문제가 속속 터지며 힘겨운 한 달을 보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평안했던 순간이 없었다. 작년 여름 쯤부터 이어진 기묘하고 소름 끼치는 사건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고, 그 탓인지 아니면 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길고 긴 슬럼프 역시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10월은 독보적으로 힘들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내게만 다른 중력이 작용하는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피곤과 고통,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내리눌렀고 내게는 그 낯선 중력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나는 10월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살았다. 넘어지지 않았던 게 다행인 정도였다. 넘어졌다면, 나는 필시 영영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 <드래곤 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나메크 행성 편이다. 오공이 초사이어인으로 각성하는 바로 그 에피소드. 나메크 행성에서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뺄 부분이 없다. 그만큼 촘촘하게 잘 짜인 이야기였다. 손오공이 드디어 초사이어인으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아마 다른 이들의 감상도 비슷할 것이다.
나 역시 초사이어인 변신 장면을 최고로 치지만 굳이 한 장면을 더 들자면 손오공이 나메크 행성에 도착해 기뉴 특전대를 박살내는 순간도 무척 짜릿했다. 모두 오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절박한 상황, 그리고 우주 여행을 하는 동안 수련을 거듭해 엄청나게 강해진 손오공. 이 두 가지 설정만으로도 손오공의 등장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러니까 나메크 행성으로 향할 때 손오공의 훈련 방법이 바로 지구보다 수십 배가 넘는 중력에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차츰 중력을 올려가며 수련을 한 덕에 손오공은 충분히 강해졌고, 그 강함이 바탕이 되었기에 초사이어인으로도 변신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사다난했던 10월을 보내면서, 낯선 중력에 눌려 어깨는커녕 기도 펴지 못하면서 내가 계속 떠올린 것이 바로 나메크 행성으로 향하는 손오공이었다. 지금의 엄청난 중력을 이겨낼 수 있다면 나도 조금 더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될까? 질문이자 동시에 바람이기도 한 이 말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렸다.
결과는 아직 모르겠다. 힘든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낯선 중력에 아직 익숙해지지도 않았으니까. 아마 올해의 마지막 무렵에는 결과, 아니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무술 사범이라는 장래 희망을 품었을 때 나는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돌아다녔다. TV에서도, 만화에서도 강해지려는 주인공은 모두 그렇게 했다. 그 주인공들처럼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꽤 오랫동안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발목에 처음 모래주머니를 찼던 날을 아직 똑똑히 기억한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함에 나는 금방이라도 강해질 것만 같았다. 그때의 심정을 떠올리며 나는 또 낯선 중력 속으로 걸어 나간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전건우
"식사량은 그대로인데 살이 계속 쪄서 속상하다고 했더니 그게 바로 나잇살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