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주 오래 입은 티가 하나 있다. 엄마와 함께 가서 산 게 아니라, 처음으로 혼자 지하상가에 가서 옷을 고르고 골라 5000원 주고 산 여름티셔츠.
눈이 편한 녹색에 커다란 나무가 프린팅된 옷으로, 그 옷을 사고 나서 정말 자주 입었다. 처음 샀을 때는 여름 내내 외출복으로 입었고, 옷이 편하니 집에서 잠옷으로 입고, 겨울에도 잘 때는 반팔 입으니 또 이 옷을 입었다.
몇 년 정도는 목이 늘어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역시 옛날에 만든 옷이 요즘 만든 옷보다 튼튼하다며 잘 입었다. 그러나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목이 조금씩 늘어났다. 엄마는 가끔씩 아직도 그 옷을 입냐며, 좀 버리라고 하지만 난 잠옷인데 어때! 하면서 또 입는다.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목 부분이 쭈글쭈글해진 티셔츠를 보며 이건 이번 여름만 입고 버려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잠옷은 집에서 편하게 입으니까 그런지 버린다는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뭘 먹고 있는데 티셔츠에 흘리고 말았다. 휴지로 닦으면서 보풀이 일어난 것처럼 벗겨진 프린팅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흉한 모습에 천천히 옷을 살펴봤다. 이제 보낼 때가 된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월간 안전가옥에는 옷을 드디어 버린 이야기를 써야겠다 싶었다. 이 옷을 어떻게 샀고, 얼마나 입었으며, 드디어 버리게 되었다, 옷정리를 더 해서 가벼운 옷장을 만들어야겠다, 뭐 그렇게 써볼까 싶었다.
얼마전 마트에서 홀린 듯이 만원에 1+1이라는 풍기인견 티셔츠를 샀다. 잠옷으로 입을 생각이라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현란한 무늬로 골랐다. 그 티셔츠는 버리고 이 옷에 정을 붙여야지. 옷을 입어보니 얇고, 하늘거리고, 톡톡한 촉감이라 피부에 달라붙지 않았다. 풍기인견이 이렇게 가볍고 시원하다는 걸 알고 번갈아가며 입는 중이다. 이것 말고도 잠옷으로 입는 티셔츠는 많았다. 여름옷이야 천이 얇으니 금방 흐물거리고 보풀이 일어나고 목이 늘어나서, 해가 바뀔 때마다 몇 벌이나 사니까. 새로운 잠옷 후보가 몇 벌씩 생기는 셈이다.
이번에야 말로 버려야지. 이번만 입고 버려야지, 하다가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고. 빨았으니 자연스럽게 입고 다시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 옷장에 걸렸다.
그러니까…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옷을 다시 살펴보니 보기 흉할 정도로 보풀이 일어나지 않았고, 프린팅이 벗겨진 것도…원래 그런 옷인 것처럼 멋스러워 보인다. 목 늘어난 것도 앞이 아니라 옆으로 편하게 입으면 명치도 안 보이니 괜찮은 거 아닌가? 잠옷인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이 잠옷을 입고 잠을 자야겠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김청귤
“이 티셔츠가 8년 이상 되었습니다…. 옛날 옷 정말 튼튼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