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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와 10년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해도연
저는 2010년 5월부터 아이패드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 산 걸 지금도 쓰고 있다는 건 아니고. 지금 옆에 있는 건 2017년에 나온 10.5인치 아이패드 프로입니다. 어쨌거나. 첫 아이패드가 도착한 게 2010년 5월 첫 주였으니 딱 10년 전이네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김에 아이패드 이야기나 해보렵니다.
2010년 1월 말에 있었던 첫 아이패드의 키노트를 보자마자 이건 사야한다는 운명적 페이트를 느꼈습니다. 미국에서는 4월 3일, 일부 국가에서는 4월말에 판매 예정이었죠. 한국 발매 예정은 따로 없었고요. 그때 전 마침 일본에 있었다보니 4월 말에 나오자마자 살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월 14일, 미국 내 수요만으로도 너무 폭발적이라 미국외 국가 발매를 5월 말로 연기한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사망의 골짜기에 서게 된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결국 미국에 유학 중이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지불은 내가 할테니 아이패드를 대신 받아서 보내달라고요. 심지어 신용카드도 없던 시기라 지인에게 직접 돈을 주며 카드 결제를 부탁했어요. 친구와 지인은 흔쾌히 수락했고 저는 결국 5월 1일에 첫 번째 아이패드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경축. 그때 언박싱하며 찍어둔 사진들이 사라진 게 너무 원통해요.
이후로는 항상 아이패드를 끼고 살았습니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함께 가지고 다니면서 하고 쓸데 없는 글도 쓰고 웹서핑도 책도 읽었죠. 대학원 면담을 위해 편도 10시간이 넘는 심야버스를 타고 다닐 때는 영화를 몇 편 씩 넣어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아직 일본에서도 발매되기 전이었다보니 낯선 사람들은 물론 상담해 주시던 교수님들도 ‘와, 이게 아이패드구나’라며 신기해 하시더군요. 참 묘한 기분이었어요. 대학원 입학 후에는 수업 자료나 논문을 담아서 다니기도 하고 하와이나 남아프리카로 관측을 갔을 때는 관측 대상에 대한 자료를 쉽게 찾아보는데 쓰기도 했죠. 이렇게 아이패드는 삶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후로 몇 대의 아이패드를 거쳤습니다. 1세대를 친구에게 팔고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들어간 3세대를 샀을 땐 감동적이었죠. 논문을 확대하지 않아도 글씨가 이렇게 깨끗해 보이다니. 그리고는 1세대 아이패드 미니를 추가로 도입했습니다. 어느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을 하면 80% 할인을 해주더라고요. 심지어 셀룰러 모델을. 두 개의 아이패드를 잘 쓰다가 커다란 아이패드는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미니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해상도는 좀 떨어지지만 한 손에 잡히는 크기와 무게는 정말 매력적이었다보니.
그러던 와중에 또 놀라운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아이패드 에어요.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얇고 가벼우면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들어가고 성능이 좋이졌는데 배터리는 그대로지? 경악했어요. 저는 사야겠다고 다짐했죠. 다만 하필이면 제가 미국 출장 중일 때 발매인겁니다. 어쩔 수 있나요. 이번엔 미국에서 직접 사야죠. 미국의 어느 대학으로 출장을 갔는데 역시 인기 제품이라 그런지 대학 주변의 가게에는 재고가 없더라고요. 딱 한 곳 전화로 물었을 때 재고가 있다고 해서 갔는데 제 신용카드를 쓸 수가 없더군요. 눈물을 머금고 가게를 나왔죠.
그래서 애플 스토어를 검색했습니다. 있더군요.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마침 현지에서 쓰고 버릴 생각으로 산 싸구려 자전거가 있었어요. 50킬로미터 쯤이야. 그런 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50킬로미터는 생각보다 멀었고 싸구려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은 고문기계였죠. 손바닥과 엉덩이의 고통을 견디며 한참을 갔습니다. 시가지에서 벗어나니 드넓은 초원과 목장이 펼쳐졌어요. 경치 좋다는 생각이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지더군요. 그런데 주변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어요. 민가의 빛은 몇 킬로미터 간격으로 드문드문 있었죠. 곧 완전한 암흑이 찾아올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결국 저는 미국 시골길의 심연이 두려워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퍼스 크리퍼스라도 나타나면 어떡해요.
돌아오고 나서 곧 더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어요. 시내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컬쳐쇼크. 근데 어디에 싣는지를 몰라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버스 앞에 실으라고 하네요. 처음엔 몰랐는데 버스 앞을 보니 자전거를 고장하는 장치가 있더라고요. 컬쳐쇼크2. 그래서 자전거를 싣고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애플 스토어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렸어요. 이제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9킬로미터. 자전거를 버스에서 내리고 미국의 평화로운 주택가를 가로지르며 애플 스토어를 향해 패달을 굴렸습니다. 커다란 쇼핑몰 내부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 들어갔고 원하는 물건을 불렀죠. 미리 전화로 재고를 확인한 다음이었기에 여유로웠어요. 도착 후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조금 전까지 창고에 있던 아이패드 에어는 제 물건이 되었지요.
몇 년 뒤에는 아이패드 에어를 중고로 팔고 아이패드 에어2를 이번엔 중고로 구입했어요. 아이패드 에어2는 대학원 졸업 후 한국에 와서도 계속 썼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10.5인치 아이패드 프로를 구입한 이후로는 아내가 쓰고 있죠. 아이패드 프로는 당시 글이 팔리면서 들어온 뜻밖의 거금(?)으로 샀어요. 그러면서 이걸로 적어도 기계값은 벌자라는 생각을 했죠. 지금 보니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주에 새로 나온 11인치 아이패드 프로를 주문했습니다. 이번엔 용량도 늘리고 셀룰러까지 추가했어요. 가격적으로 악명 높은 애플펜슬과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 빼놓을 수 없는 애플케어 플러스까지 (더욱 높은 악명을 구축하고 있는 매직 키보드는 아무래도 제가 사용하는 방법과는 맞지 않아 고르지 않았어요). 가격을 보니 21.5인치 4K 아이맥을 살 수 있는 가격이더군요. 좀 충격이었어요. 10년 전 아이패드를 처음 살 때는 좀 비싼 아이팟을 사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그냥 비싼 컴퓨터를 사는 느낌이네요.
이번에도 역시 아이패드로 쓴 글이 적어도 아이패드 값은 벌어 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아이패드가 아니어도 글은 쓸 수 있지 않냐고 하신다면, 그냥 웃지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해도연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또는 커버)의 키감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가벼운 키감이 정말 좋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