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나.. 여기 가고 싶다..."라는 주제로 썼습니다.
환전, 구글 맵, 면세점, 기내식.. 전생의 무언가처럼 아련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이네요.
집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었던 올 한 해, 이야기 속 그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조이는 이 곳에 가고 싶다
<극락왕생>의 고등학교
웹툰
코로나 시대, 떠나고 싶은 곳은 극락정토...가 아니라, 웹툰 <극락왕생>을 읽었습니다. <극락왕생>은 오픈 플랫폼 딜리헙에서 연재 중인 고사리박사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연재가 막 시작되던 무렵 한 친구가 “1990년대 출판 만화 전성기의 한국 여성만화가 부활한 듯한 작품”이라는 극찬으로 영업을 시도했고, 저는 첫 화를 보자마자 그 말에 공감했죠. 하지만 생업에 치어 한동안 이 작품을 잊고 있다가 이번 10월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단행본을 시작으로 다시 몰아서 읽고 있습니다.
<극락왕생>의 주인공은 지옥의 호법신 도명 존자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잊어버린 채 귀신이 되어 이승을 떠돌다 되살아난 자언입니다. 근신 기간에 인간 세계에 관여해 벌을 받게 된 도명은 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자언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1년은 2011년, 자언의 고3 시절이고요.
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자언의 고향인 부산에서 고3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귀신이었다 인간으로 돌아온 자언은 기억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경험하는 일이지만, 안개처럼 뿌연 것들이 많아요. 3년 내내 그토록 친했던 친구와 왜 서서히 멀어졌는지, 언제부터 엄마를 미워하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깜깜합니다. 대신 인생 2회차를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죠. 예컨대, 사랑은 변하고 그리움은 잊힌다는 것, 그래서 어떤 마음은 그때 바로 꼭 소리 내서 말해야 한다는 것 같은 거요.
<극락왕생>에선 어떤 만화나 영화,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는 진짜 같은 여고생들이 나와요. 시끄럽고, 많이 먹고, 많이 웃는 너무나 평범한 친구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도명 존자처럼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청소년이었고, 그래서 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열 받거나 부끄러운 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정말 그런 일만 있었을까 싶네요. 극 중 자언의 대사처럼, 왜 좋은 건 다 잊어버릴까요. 왜 잊고 싶은 건 계속 기억이 날까요.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가면 자언처럼 알 수 있을까요. 기뻐도, 슬퍼도, 괴로워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어떤 날들, 어떤 이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걸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조이
"고3 때 쉰들러 리스트처럼 선생님들의 촘촘한 감시망을 피해 야자 탈출을 진두 지휘한 건 잊을 수 없는 저의 자랑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