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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않고도, 훔치지 않고도, 빼앗지 않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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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인천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기다리면서, “새로 나온 국힙 없나?”하고 멜론을 뒤적이던 그날을. 대략 3년 전 이맘 때였다. 당시 나는 새로 나온 신보들을 빠짐 없이 챙겨 듣던 열심 리스너(?)였기에, ‘김심야와 손대현’ 1집 [Moonshine]을 재생했던 동력도 일종의 의무감에서였다. 이윽고 첫 트랙의 랩들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건 각 잡고 들어야 하는 음반이라고.
이 앨범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 적지 나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큰 이유가 없어 (첫 트랙)
내가 설 곳이 줄고 징그러운 걸 낸다면 그만한 명분을 가지고 올게 (마지막 트랙)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김심야는 프로듀서 FRNK와 함께 XXX라는 팀으로 [Language], [Second Language]라는 앨범을 냈고, 나는 이를 [Moonshine]과 합쳐 ‘분노 3부작’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 ‘분노 3부작’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폭로하며 공격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회 안으로의 유입을 갈망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다. 이를 깨달은 김심야는 허무해 하는데, 이는 어찌보면 한국 사회 속 90년대 생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도 최근 3년 동안 비슷한 허무를 느꼈다. 사회에 대한 로망을 갖고 열심히 글을 쓰던 고등학생 시절. 그러나 당도한 사회는 로망과 달랐다. 그 순간부터 “뭘... 써야 하지?”라는 고민이 생겼다. 내가 속한 사회를 적극적으로 타자화시키는 작업도 여러 차례 해봤다.
하지만 그 끝에서 느낀 건, “내가 싫어하던 건 특정 사람이었는데, 왜 나는 사회 자체를 싫어하는 척 했을까?”라는 깨달음이었다. 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펼쳤던 성급한 일반화.
그리고 2020년 11월 28일. 김심야의 첫 솔로 앨범 [Dog]이 나왔다.
3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동안, 김심야는 자신이 과거에 써내렸던 노랫말들을 모두 부정한다. ‘랩 못하는 래퍼들 내가 다 죽여 버리겠다!’던 그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다. 마지막 트랙 ‘DON'T KILL, DON'T SPILL, DON'T STEAL’이 대표적이다. 각자의 해석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 노래의 메시지를 아래와 같이 해석했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도, 누군가의 것을 훔치지 않고도, 빼앗지 않고도, 나는 존재할 수 있어.’
뻔한 말이지만, 동시에 어려운 말이다. 위를 실천하기 위해선 (가사에서 말하듯이) 마음을 비우고, 무언가에 대한 과한 애정도 빼야 하니까. 더불어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기반도 필요하다. 돈이 없는 순간에 평화를 소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방송에선 무소유를 외치지만 현실에선 풀소유를 하고 있는 비즈니스님들을 보면 얼마나 위선적인가. 그런 모순들을 보면 나의 ‘죽임’에, ‘훔침’에, ‘빼앗음’에 정당화를 해도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말그대로 정당화일 뿐, 진실인 건 아니다.
그 진리를 얘기하기 위해 ‘예술’이 필요한 거고, 이는 대중들 모두에게 유효한 말이다. 이를 깨달은 순간 나는 문득 김심야가 왜 이번 앨범 [Dog]을 전작들과 달리 대중성에 신경 쓰고 만든 앨범이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사운드가 대중적이다, 멜로디가 대중적이다라는 얘기가 아닌… 이런 메시지들이 대중들에게 유효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닐까.
문득 며칠 전, 강형욱 님께서 유튜브 라이브에서 했던 말도 떠오른다. 최근에 ‘천둥이’라는 강아지를 훈련하는 방법이 전보다 강압적이라는 여론이 있었고, 실제로 ‘천둥이’ 견주 님은 커뮤니티에 강형욱 님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강 훈련사 때문에 천둥이가 트라우마가 생겼고, 자신은 정신과까지 다니고 있다는 글에 강형욱 님은 유튜브 라이브를 켰고, 이렇게 해명을 했다.
“어떤 보호자들은 반려견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아주 강하게 투영하고, 자신이 느끼기에 힘들었다고 느끼면 반려견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하죠.”
이어서.
“전 이럴 때 피하는 방법을 너무 잘 알아요. 위로하는 척. 공감하는 척. 그 분과 대화를 이어나가면 되죠. 이렇게 하면 나는 공감해주는 좋은 훈련사, 당신은 개를 사랑하는 보호자, 이렇게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훈련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이 얘기를 가져온 이유는, 지금의 ‘대중성’은 무언가에 대한 과한 애정을 갖도록 만드는 성질이란 걸 얘기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 과한 애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당화 한다. 강형욱 님이 꼬집은 ‘아무 것도 행동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행복하며 거절이란 걸 모르고, 성장도 모르고, 결핍이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는, 개들에게 정말 사랑만 주고 싶은 사람들’은 실은 ‘남이 죽어도, 남이 훔침을 당해도, 남이 무언가를 빼앗겨도, 나는 행복할 수 있어’라고 카르텔을 형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대중성에 대고 김심야는 [Dog]을 통해 ‘DON'T KILL, DON'T SPILL, DON'T STEAL’을 외친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메시지가 좋다. 김심야처럼 작품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강형욱처럼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생각하는 ‘대중적인 훈련법’을 전파하는 사람도 멋있다. 나도 그들을 닮고 싶다. 대중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류연웅
"제가 생각하는 명반의 기준은… 음반을 다 들은 후에, 제일 좋은 곡이 마지막 곡이고, 두 번째로 좋은 곡이 첫 곡이면 명반입니다. 그렇기에 [Dog]은 명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