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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문학'과 '사상'의 이름을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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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PD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충격적인 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한 작가님께서 계약 해지를 요청해오셨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으며 당분간은 작가로써 글을 쓰며 살아가기 어렵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계약 해지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좋은 글을 써오시던 작가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이 작가님의 팬이었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를 고르고 골라 원고 청탁 메일을 보냈고, 수락 메일을 받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계약까지 완료하고 나서는, '안전가옥에 오길 정말 잘했어'를 수십번이나 되내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는 절필 선언이라뇨.
도대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하며 여러 주가 지나갔습니다. 안전가옥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들이 있었구요. 명절 연휴가 지나서야 겨우 회신을 드렸습니다. 계약 해지는 원하시는대로 진행하겠지만, 부디 모든 일들이 잘 정리되기를 바란다고. 언제든 괜찮아지시면 슬쩍 연락 부탁드린다고, 기다리고 있겠다고요.
그리고 며칠 후, 작가님의 입장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문학사상'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저희에게 보내주신 메일 내용과 입장문을 겹쳐 보면,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울컥, 숨 쉬기가 어려웠습니다. 명치 아래가 단단해지며 아려오기 시작했어요.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을 넘어,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상의 권위를 앞세운 불공정한 계약서를 내밀었습니다. 선택을 서두르도록 종용했습니다. 나쁜 짓이 들키자,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정작 몇몇 직원은 윗사람의 눈을 피해 작가를 보호하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이상한, 일관성 없이 엉망진창인 계약서들이 작가들에게 보내졌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들에게는 풀어주고, 가만히 있는 작가들은 그냥 두었습니다.
협박과 거짓말, 꼬리 자르기,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가해 행위에 가담하게 만드는 일. 깡패들이 하는 짓입니다. 추악한 권력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사기꾼들이 하는 짓입니다. 감히 '문학'과 '사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따위 더러운 짓거리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수치스러워 펜을 꺾은 작가님의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너무나 슬픕니다. 어쩜 이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을까요. 이렇게 나쁜 짓들을 해서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요. 선한 사람들은 자꾸만 떠나고, 악한 사람들만 남아서 동네를 폐허로 만들어요.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로 만들어서,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깡패와 사기꾼들이야 돈과 권력을 향한 투명한 욕망을 감추지 못한다지만, 고작 한국문학 출판시장이잖아요. 여기서 사기치고 꼼수 부려봐야 얼마 먹지도 못하는거,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그래서 더 나빠요.
창작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고 보호해도, 당신들 손해보는거 별로 없잖아.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다는건. 진짜. 어휴.
저는 윤이형 작가님의 팬이자,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안전가옥에서 스토리 PD로 일하고 있는 업자이기도 합니다. 독자로써 정당하고 정의로운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고, 업자로써 창작자들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운동에 참여하고 계신 모든 창작자, 독자, 번역가,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응원합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신
"안전가옥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